강소농 현장을 가다 (83) 지승우농원

발행일 2021-03-24 09: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오이넝쿨 자동유인시스템 개발해 특허 받은 맥가이버 농부

30년 오이재배의 프로 농사꾼 부부의 유별난 친환경 사랑

남들이 모두 어렵다는 친환경농업 무섭지 않아

강상규·이순애 공동대표가 수확한 오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중략) ~ 어디에선가 먼 먼 훗날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선택한 길에 대한 자부심을 노래했다.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면 망설인다.

가지 않는 길에는 미련이 남는다. 또 선택한 길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친환경 농업은 농업인의 입장에서는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9년에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아직 역사가 짧다.

이미 30년 전에 친환경농업에 뛰어들어 꿋꿋이 한길을 가는 농사꾼이 있다.

구미에서 친환경농업을 하는 ‘지승우농원’의 강상규(62)·이순애(55) 공동대표다.

오이 5천㎡와 부추3천300㎡, 방울토마토 2천300㎡를 재배하면서 한우 15두를 사육한다.

강상규 대표가 오이 넝쿨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넝쿨자동유인장치로 넝쿨을 옆으로 이동시키면서 유인줄에 집게로 고정시키는 작업이다.
◆평생 직업을 찾아서

강 대표는 유명 음료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농협에서 근무했다.

농협에서 7년 동안 일 하다가 다시 농업으로 전직을 했다.

한번 전직을 할 때마다 소득이 줄어들었다.

주변에서는 사서 고생을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바보스러운 선택이라고도 했다.

이 대표는 사료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때 농협에서 사료구매 업무를 하던 강 대표를 만났다.

결혼을 하면서 시부모의 농사일을 도왔다.

시아버지는 농촌에서 살려면 농사일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수박순도 자르고 수정도 했다.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농사일을 배웠다.

어느 날 강 대표가 농협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틀에 박힌 직장생활보다는 농사일은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농사기반은 갖춰져 있으니 열심히 노력한다면 소득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부는 고민 끝에 평생직장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농업을 선택했다.

올해로 농사경력이 30년을 넘었다.

이제는 주변에서 부부를 프로농사꾼이라고 한다.

강상규·이순애 공동대표가 수확한 오이를 운반하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 고집스러운 친환경 재배

강 대표는 농사를 시작하면서 바로 친환경 농업에 도전했다.

당시는 친환경 농업의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다.

첫 시도로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자라는 풀을 보고 이웃에서는 먼저 말렸다.

농약 없는 농사는 불가능이라고 했다.

이 대표도 포기하자고 졸랐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풀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 대표는 포기를 몰랐다.

이후 2005년에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오이와 부추, 토마토를 재배하면서 화학비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친환경퇴비를 구입했으나 이제는 자가 제조 퇴비를 쓴다.

친환경 퇴비를 만들기 위해서 한우를 사육한다.

무항생제로 사육한 한우의 우분(牛糞)을 1년 이상 부숙시켜서 쓴다.

병해충 방제는 공시된 친환경 자재와 직접 제조한 천연 약재만을 사용한다.

은행열매와 산초열매로 천연 살충제를 만든다.

한번 병해충이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예방 위주의 방제를 한다.

몇 해 전에는 진딧물로 인해 15일 만에 오이 밭을 폐경(廢耕)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친환경을 고집하는 이유는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지승우농장’이라는 이름은 자녀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지었단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먹거리라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부부는 “그 동안 친환경재배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이제는 노하우가 쌓여 큰 어려움은 없다”며 “봄철에 깨끗한 냉이나 쑥을 캐러 농장 주변에 몰려오는 아주머니들을 보면 흐뭇하다”고 웃음 지었다.

강상규 대표가 자신이 개발해 특허를 받은 오이넝쿨자동유인시스템의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프로 농사꾼의 오이

강 대표의 오이 재배 기술은 프로급이다.

겨울에는 ‘백다다기오이’, 여름에는 ‘가시오이’를 재배한다. 30년째 오이를 재배하고 있다.

오이는 성장 속도가 빠르고 다수확 작물이어서 소득 회전율이 높은 장점이 있다.

정식한 지 20일 정도면 수확이 가능하다.

조금 과장하면 ‘심고 돌아서면서 수확 한다’고 말 할 정도로 빠르다.

여름철에는 하루에 2번 수확한다.

마디마다 열매가 달리기 때문에 수확량도 많다.

문제는 품질이다.

아무리 수확량이 많아도 품질이 떨어지면 허사다.

영양결핍과 염류장애로 인한 곡과(굽은 오이)와 뾰족과(끝이 뾰족한 오이)를 막는 것이 관건이다.

염류장애는 폐경 후 충분한 관수작업으로 해결한다.

영양 결핍은 어렵다.

통상적으로 1·2번과는 정상과가 되지만 3번과는 곡과가 되기 쉽다.

그래서 3번과는 따낸다.

강 대표는 자가 제조한 특별한 액비를 활용해 1·2·3번과를 모두 키운다. 그만큼 수량이 늘어난다.

액비는 생선부산물과 동물사체에 설탕을 혼합해 4~5년간 숙성시켜서 만든다.

아미노산 액비를 만드는 것이다.

수시로 오이를 관찰하고 액비와 물을 공급해 고품질의 오이를 만들어 낸다.

오이와 토마토를 번갈아가면서 재배하는 것도 연작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수확한 오이.
◆쉽고도 어려운 부추재배

부추는 재배에 장점이 많은 작물이다.

한번 심으면 3~4년 정도 계속 수확할 수 있다.

성장속도도 빨라 연간 5~6회 정도 수확이 가능하다.

그만큼 다수확 작물이다. 당연히 소득도 높아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줄기 수가 많아지면서 가늘어져 품질이 떨어진다.

적절한 비배 관리로 분얼을 방지해 적정 줄기 수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온도 관리다. 부추는 온도 변화에 대단히 민감한 작물이기 때문이다.

환기 과정에 급격한 온도 변화가 일어나면 끝이 마르는 현상이 일어난다.

온도 변화가 심하면 끝이 마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다.

항상 일정한 온도 관리는 필수 요소다. 아기를 다루듯이 조심해야 한다.

따듯한 아기가 갑자기 찬바람을 쐬면 감기에 걸리는 것과 같다. 한번 끝 마름 현상이 일어나면 상품성은 크게 떨어진다.

모두 베어서 폐기해야 한다. 그만큼 손실도 커진다.

그래서 부추를 쉽고도 어려운 작물이라고 한다.

노란 오이 꽃.
◆하우스 속의 작은 꽃동산

오이 하우스 안쪽에 작은 꽃동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인처럼 당당하다.

이 대표의 꽃동산이다.

다육 식물을 중심으로 500여 개 화분에 꽃들이 자란다. 처음 꽃동산을 만들 때 강 대표가 반대했다.

이웃들도 오이를 한 포기 더 심는 것이 좋겠다면서 만류할 정도였다.

이 대표는 정서적인 안정감도 필요하다면서 강행했다.

꺾꽂이와 포기 나눔으로 증식을 해나가는 것이 너무 재미가 있었다.

오이를 수확하다가도 꽃들을 보면 피로가 사라졌다.

오이 재배기술을 배우겠다고 견학 온 농민들도 오이는 잠깐 들러보고 꽃 앞에 몰려든다. 하우스 안의 꽃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이 이어진다.

오이가 아니라 꽃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는 몇 포기씩 얻어간다.

이제는 강 대표가 더 열성적이다. 쏟아지는 질문에 먼저 나서서 답변을 한다. 주객이 전도됐다.

한창 자라고 있는 오이.
◆특허 받은 오이 넝쿨자동유인시스템

강 대표는 맥가이버로 불린다.

손재주가 좋기 때문이다.

농장에 오면 언제나 쉽게 일하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뿐이다.

오이는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제대에 넝쿨을 정리해야 한다.

일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넝쿨정리를 해야 하고 사람의 손길이 닿는 만큼 오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연히 성장에 지장을 받는다.

넝쿨정리를 쉽게 하는 것은 꼭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2년간의 연구 끝에 넝쿨자동유인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랑마다 설치된 유인줄 양쪽 끝에 드럼을 설치하고 회전시켜 유인줄을 필요한 길이만큼 감아서 넝쿨을 이동시키는 장치다.

전기모터로 작동한다. 4시간이 걸리던 한 이랑의 넝쿨정리를 1시간 정도면 마칠 수 있다. 2006년에 이 장치로 특허를 받았다.

모든 농민이 좀 더 쉽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모든 기술을 공개하고 있다.

◆이제는 쉬운 농사를 짓고 싶어

부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일만 했었다.

특히 친환경 재배를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노동 강도도 높았고 노동량도 많았다.

이제는 적은 노동력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는 농업을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오이를 축소하고 부추를 확대할 계획이다.

퇴비 생산을 위해 한우는 35두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축사 지붕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한 것도 매월 일정액의 소득을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우스에는 자동화 시설을 설치해 노동력을 줄이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늘어나는 여유시간은 건강관리와 취미생활에 투자해 즐기는 농부의 삶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