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뭘까/ 언제부터 저곳에 스크래치 손톱자국/ 아하, 누가 나를 그려놓았네// 네가 앉은 쪽으로 돌아간 고개/ 너의 웃음에 열린 귓바퀴/ 네가 오는 길목에 기대선 그림자/ 몰랐네/ 먼 개울의 나뭇잎 하나/ 이토록 달려온 줄을/ 장렬히 스러질 어느 날이라 해도/ 지금 두근대는 이 발길에서/ 돌아서지 않겠네// 보이나요/ 내가 던져놓은 너의 창공에/ 유유히 떠가는/ 실눈

「대륜문학」 (대륜문학회, 2021)

해와 달 그리고 별의 존재감은 거의 절대적이다. 하늘에서 빛을 발산하는 까닭에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체이다. 높은 하늘에서 강렬하게 빛나는 해는 두려움의 대상이고, 해가 없는 밤에 은은히 빛나는 달은 해가 없어서 오히려 빛나는 존재이다.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은 살아있는 듯 보이는 무수한 생명체이다. 달과 별은 빛이 부드러워서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해와 다르다. 그런 이유로 달과 별은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해에 관한 신화나 전설이 있긴 하지만 달과 별에 얽힌 이야기만큼 다양하고 많진 않다. 나안 관찰의 가능 여부가 그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안 관찰은 호기심을 유발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정보의 대부분은 눈을 통해 들어온다. 그런 면에서 가시 면적이 넓은 달이 훨씬 풍요롭다. 별은 기껏해야 위치 확인에서 움직임 포착이 고작이다. 인종과 지역을 초월하여 달에 대한 이야기와 풍속은 차고 넘친다. 미술과 음악 그리고 문학 등 예술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달이다. 달을 노래한 시가 넘쳐 나는 것도 우연이라 할 수 없다.

달은 스토리텔링의 보고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달 속에서 이태백이 놀던 계수나무와 토끼를 보기도 하고, 항아가 변한 두꺼비를 찾아내기도 한다. 보는 것은 비슷해도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야기는 인간의 근원적인 본능이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짐과 동시에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욕구를 아울러 가진다. 여기서 이야기를 창조해낼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된다. 시인이 등장한 일은 당연한 귀결이다.

낮에 분주하게 쫓아다니다가 밤엔 한숨 돌리며 달을 바라다보는 여유를 가진다. 둥근달은 그리운 얼굴을 비춰주는 만능 거울이다. 정겨운 어머니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고, 보고 싶은 연인의 모습을 비춰주기도 한다. 달은 보는 사람에 맞춰 필요한 것으로 변신하는 마법사이다. 애주가에겐 이태백의 술 항아리로 변신할 것이고, 배고픈 사람에겐 한 조각의 빵으로 변할 것이다. 돈이 궁한 서머싯 몸의 경우라면 달이 금화로 보였음직하다.

시인의 달은 자화상이다. 달에 난 스크래치는 지난 삶의 실책이나 과오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그리운 사람 쪽으로 돌아간 고개도 예사롭지 않다. 그대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망울을 굴리고 그대 웃음소리라도 들어보려고 귀를 쫑긋 세운다. 그대 오는 길목에 기다리기 일쑤다. 하늘에 떠있는 달은 그대를 그리는 내 모습이다. 어디에 있어도 유유히 떠다니며 그대를 지켜볼 터다. 그대 목소리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자 귀를 기울이고, 그대 모습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자 실눈을 뜬다.

개울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하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언제 생을 마감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앞으로 걸어갈 따름이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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