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죄를 누구에게 물을까/자인은 태어났고 집안은 가난했다//세상이 너무 좆같아요/열두 살의 법정 고백//제 살을 파먹고 자란 새빨간 본능에/체면은 도망가고 식욕이 자라났다//부모를 고소합니다/왜냐구? 날 낳았으니까//생명은 커갈수록 맨발에 힘을 주고/말마다 벌린 입들이 길거리를 헤맨다//자꾸만 화가 납니다/자꾸 배가 고파서

「시마」(2019, 창간호)

공화순 시인은 경기도 화성 출생으로 2016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지금도, 나는 흔들리고 있다’와 시조집 ‘모퉁이에서 놓친 분홍’이 있다. 그는 일상 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고 존재론적 은유를 펼친다. 들뜨지 않는 잔잔한 목소리로 주제에 집중한다.

누구든지 한두 번쯤 내가 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봤을 것이다. 영화 ‘가버나움’의 주인공 소년 자인도 마찬가지다. 가버나움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바닷가에 있는 마을 이름이지만, 무질서하게 쌓인 물건을 뜻한다고 한다. 이 영화는 레바논에 만연한 빈곤으로 인해 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 대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라는 말은 출생의 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열두 살짜리 자인의 말이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시조 ‘가버나움’은 내가 태어난 죄를 누구에게 물을까, 하고 묻는다. 자인은 태어났고 집안은 가난했기에 세상이 너무 좆같아요, 라면서 열두 살 먹은 자인은 법정에서 고백한다. 그는 제 살을 파먹고 자란 새빨간 본능으로 말미암아 체면은 도망가고 식욕이 자라났다. 그래서 부모를 고소합니다, 라고 소리친다. 까닭은 단 하나다. 자신을 낳았기 때문이다. 셋째 수에서 화자는 생명은 커갈수록 맨발에 힘을 주고 말마다 벌린 입들이 길거리를 헤맨다, 라고 진술한 후 자꾸만 화가 납니다, 자꾸 배가 고파서라고 끝맺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자인은 여동생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법정에 서게 된다.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먼저 인간이 된 후에야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함을 이 영화는 잘 말하고 있다. 육체적 쾌락이나 즐기다가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자녀들은 자존감을 가지고 성장할 권한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함부로 훼손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해 태어날 수는 없지만 출생하는 순간부터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것이다. 시조 ‘가버나움’은 영화를 통해 떠올린 생각들을 세 수로 노래하면서 사람답게 살 권리를 오래도록 되새기게 한다.

그는 또 ‘일상의 실금’에서 삶의 불안을 표출한다. 해가 지날수록 몸에도 속도가 붙어 불안한 마음으로 달아난 시간을 쫓다가 한순간 놓친 자리에 귀 한 쪽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또한 날마다 똑같은 표정으로 찾아오는 일상들을 떠올리면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마음이 삐끗하기도 한다. 거스름 떼어내려다 실금이 가는 오후의 일이다. 이러한 섬세한 감각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라는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생각을 담는 데까지 벋는다. 우리가 잘못하는 일 중의 하나가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어제와는 조금이라도 다른 오늘을 살기 위해 힘쓰는 중에 이 시편을 썼을 것이다.

‘일상의 실금과 더불어 시조 ‘가버나움’을 다시 읽으며 영화 ‘가버나움’의 줄거리를 생각한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지 모든 어린이들이 부모와 사회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맑고 밝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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