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 김금철

발행일 2021-03-31 09:49:4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 첫 단추를 잘 꿰어야 ~

…만난 지 30년 만에 아내와 이혼했다. 결혼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인생의 전환점이지만 이혼 또한 일상적인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전기다. 이혼 선고를 받고 법원 문을 나서는 순간 법적 효력이 현실이 되고 부부는 남남이 된다. 떠나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한 바탕 꿈을 꾼 듯하다./ 자취를 하던 대학시절 역시 자취를 하던 아내를 만나 동거를 했다. 동거 여섯 달 만에 애가 들어서서 아내와 결혼을 했다. 첫딸을 낳았다. 군대를 갖다오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자식 둘을 가지면 군 면제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믿고 또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과 달랐다. 대학원에 등록해 군 입대를 연기해두고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형의 일을 도왔다. 주말부부가 된 셈이다. 집에 들렀더니 4살 난 큰딸이 서울 가지 말라고 매달렸다. 아빠가 서울로 가고나면 엄마가 한밤중에 시장을 자주 간다는 것.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어린아이의 응석 정도로 받아들였다./ 형님 사업을 본격적으로 돕고자 서울로 이사를 했다. 딸은 엄마가 밤에 몰래 나간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군 입대는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차일피일 연기한 끝에 스물여덟에야 군에 입대했다. 두 번째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8살 난 큰딸이 엄마가 한밤중에 집을 자주 비운다고 고변했다. 한 집에 세 들어 사는 70대 중반의 할머니에게 사실 확인을 해봤다. 그런 말하면 천벌 받는다고 펄쩍 뛰었다. 휴가 끝나기 하루 전, 마당에서 40대 초반의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하여 응접실로 들어갔다. 아내가 밤마다 밖에 나가서 사내를 물고 들어온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말이 엇갈리니 좋은 쪽을 믿고 싶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귀대했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약이지만 치유할 수 없는 후유증도 존재한다. 아내를 만난 지 30년 만에 마침내 이혼을 결행했다. 지금쯤 한 집에 살던 70대 중반의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것이고, 40대 초반의 주인아저씨는 60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 주인아저씨가 지금 나이였다면 아내의 불륜을 바로 일러바쳤을까. 아마도 70대 중반의 할머니처럼 말했을 지도 모른다.…

세상에 확실한 건 거의 없다. 특히나 남녀관계는 영원한 미스터리다. 남녀는 끝없는 밀당을 거쳐 헤어지기도 하고 만남을 이어가기도 한다. 밀당을 통한 이성 탐색은 우수한 유전자를 2세에게 물려주려는 본능이고 약육강식의 투쟁에서 살아남을 강한 배우자를 고르는 작업이다.

결혼해 부부가 됐다고 이성 탐색이 끝나는 건 아니다. 결혼은 치열한 배우자 쟁탈전의 법적 타협일 뿐이고 유전자 보존에 대한 본능적 욕망을 마무리하는 근원적 처방은 아니다. 수컷은 가능한 한 씨를 많이 뿌려 그중에 최선의 후세를 얻는다는 전략이고 암컷은 가능한 한 사전에 우성을 가려내 불필요한 출산을 막는다는 전략이다. 이는 신체구조와 회임기간 및 산고에 기인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준 신의 선물이다. 잠재적 생산가능기간(4~5년)에만 지속되는 시한부 감정이다. 일부일처제는 신이 예정한 제도가 아닐 수 있다. 신은 사랑의 유효기간 동안만 일부일처를 기획한지 모른다. 세상이 워낙 급속히 바뀌다보니 기존 삶이 뿌리 채 흔들리는 것 같아 불안하다. 결혼제도의 균열도 그중 하나다. 그냥 다 비우고 살까보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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