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상주성도 도면(1827~1870)의 상주읍성 부분.
▲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상주성도 도면(1827~1870)의 상주읍성 부분.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이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 중인 상주시 인봉동에서 상주읍성의 성벽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상주시에 따르면 상주읍성은 인봉동 35-5번지 유적에서 발굴됐으며 성벽은 체성부(성곽의 부속시설을 제외한 성벽의 몸체 부분)와 아래의 기저부(성벽의 몸체 부분 아래의 기초시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1912년 일제의 읍성 훼철 당시 지상의 성벽이 철거됐고 성벽 기저부 위쪽이 임시 도로로 사용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지적도 상에 ‘성도’로 표기한 것도 이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일제 강점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벽 자리 위에 건물들이 건축되면서 기저부도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기저부의 규모는 길이 760㎝ 정도로, 조사 대상지의 북쪽과 남쪽 조사 경계 밖으로 이어져 있다.

너비는 성벽 외벽 쪽인 동쪽 지대석에서 내벽 쪽인 서쪽으로 470㎝ 정도만 확인됐고 나머지는 유실됐다.



높이는 40㎝가량으로 확인됐으며 성벽 기저부를 견고하게 축조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축조 시기는 성벽 기저부의 다짐층과 보강층에서 조선시대 전기 백자종지편이 출토된 것을 감안하면 조선시대 전기로 판단된다.

문헌기록에 따르면 상주읍성은 1385년(고려 우왕 11년)에 축조된 후 일제의 읍성 훼철령(1910년)에 따라 훼손(1912년)될 때까지 520년 이상 유지됐다.

고려 말 왜구 침입에 대비해 만들어진 읍성은 조선 초기 경상도의 행정·문화·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표조사와 연구를 통해 성벽의 위치에 대해 추정만 했을 뿐 그 실체는 확인하지 못했다.

2019년 조사 대상지의 북서쪽 40m 지점인 인봉동 유적에서 상주시 상주박물관이 시행한 상주읍성의 해자(垓子)가 처음으로 발굴된 성과가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성벽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조사 대상지가 일제 강점기(1913년)에 제작된 지적도에 성도(城道)로 표시된 부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현재 지적도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했다.

이를 통해 이곳이 상주읍성의 북동쪽 성벽이라는 것을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밝힌 것이다.

강영석 상주시장은 “지역에서 처음으로 상주읍성 성벽이 확인됨에 따라 시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상주읍성 복원 사업에 탄력을 받게 됐다” 며 “앞으로도 상주읍성의 실체를 찾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일기 기자 kimi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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