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석
▲ 박운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해수욕장 옆 11만9천726㎡의 땅에 색색의 튤립이 활짝 폈다. 이름 뿐 아니라 색상과 모양까지 특이한 200여 종의 튤립이 주는 풍경은 황홀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충청남도 태안에서 열리고 있는 ‘2021 태안 세계튤립꽃박람회’ 이야기다.

지난주 튤립박람회 현장을 찾았다. 2012년 화훼농가에서 시작해 올해 10주년을 맞은 박람회는 작년엔 코로나19 영향으로 행사 자체가 취소됐다. 그래선지 올해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튤립의 향에 취해있었다. 굳이 세계튤립꽃박람회라 이름 지은 건 태안이 2015년과 2017년 세계 5대 튤립도시로 선정된 영향이 크다고 한다. 관광지인 안면도 꽃지해수욕장과 접해있는 축구장 15배 크기의 땅을 튤립과 루피너스 등이 뒤덮고 있다. 튤립의 색이 이렇게 다양한지, 이렇게 예쁜 꽃이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튤립의 꽃말은 색상별로 다르다. 그 중 노란 튤립의 꽃말은 ‘헛된 사랑’. 실제로 1600년대 네덜란드 사람들은 튤립을 향한 헛된 사랑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바 있었다. 튤립을 두고 지나치게 과열된 투기현상을 보인 것이다.

당시의 네덜란드는 유럽 교역의 중심이었다. 거기에다 직물 산업의 호황으로 상인들은 엄청난 자본을 쌓아나갔다. 이들이 부를 과시하는 수단은 자신들의 초상화나 정원을 가꾸는 것이었다. 당시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가장 적합했던 튤립은 귀한 꽃이었다. 때문에 부의 상징으로 투기나 매점매석이 발생하는 폐단이 생기기도 했다.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튤립광풍이 몰아치며 한 뿌리의 가격이 4천500만 원이나 나가고 희귀종은 1억 원이 넘을 정도였다. 튤립 한 두 뿌리를 사서 되팔아 이익을 남기기 위해 집을 담보로 잡히고 돈을 빌리고 자금을 마련했다. 실제 1635~1636년 사이 튤립 가격은 59배나 폭등했다. 그러나 투기 열풍이 지나자 가격은 이내 폭락했다. 시장은 완전히 붕괴됐고 뒤늦게 뛰어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파산했다.

튤립 구근이 양파 가격으로 순식간에 떨어진 건 꽃 감상이라는 실수요보다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튤립 버블’이다. 이후 튤립버블은 IT(정보기술) 버블, 혹은 부동산 버블 등이 떠오를 때마다 하나의 예로 거론되게 됐다.

어떤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의 본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이를 사고파는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믿음이나 기대 때문에 형성된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 상품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도 투기꾼들이 구매하는 것은 항상 더 높은 가격에 사려는 ‘더 큰 바보’가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이는 투기가 판을 치고 버블의 징후가 나타나는 요즘의 우리나라 자산시장과도 많이 닮아있다.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가 그렇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7개월 만에 1억 원 넘게 오르며 11억 원을 넘겼다는 소식이다. 최근 1년1개월 사이 2억 원이 오른 셈이다. 여기다 정치권의 부동산 규제 완화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다시 2주째 뛰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장내 일평균 주식 거래대금이 1조2천500억 원을 기록했다. 장내 일평균 주식 결제 규모가 1조 원을 넘은 건 역대 처음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두 사람만 모여도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이야기다. ‘영끌’은 부동산과 주식을 거쳐 이제 가상화폐로까지 이어졌다.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코인 채굴앱이 성행하고 SNS에서도 앱 가입을 홍보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코인에 투자해 거액을 벌어 ‘파이어(FIRE)족’이 됐다는 무용담도 횡행한다.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유를 얻어 회사를 일찌감치 그만두는 이들을 가리킨다.

거품은 언젠가는 꺼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거품이 꺼진 이후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17세기 네덜란드가 튤립버블로 위기가 있었지만(실제로 이후 영국에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의 지위를 내줬다) 연착륙할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세계 최강의 실물경제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의 투기에 쏠린 관심을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돌려야 한다. 파이어족이 젊은이들의 꿈이 돼서야 되겠는가.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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