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

기상청장

비발디(1678~1741)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오랜 시간 세계인에게 감동을 준 명곡이다. 총 12악장으로 계절별 3악장씩으로 구성된 ‘사계’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를 아주 잘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만약 비발디가 최근에 활동한 음악가라면, ‘사계’는 어떻게 작곡됐을까?

2019년 스위스 연구진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 지역 폭염 일수가 1950년 이후 2018년 사이 3배 증가했으며, 폭염을 기록한 날의 최고기온 또한 평균 2.3도가 증가하는 등 유럽의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했다. 즉, 비발디가 태어난 이탈리아의 여름이 더욱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진 것이다. 비발디가 오늘날에 ‘사계’를 작곡했다면, 길어진 여름과 짧아진 겨울 등 계절별로 악장 구성이 제법 달라졌을 것이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비단 유럽뿐만 아니다. 한반도 또한, 봄과 여름이 각각 4일씩 길어져 2~6일 빨라졌고 겨울은 7일이나 더 짧아졌으며, 최근 10년 동안의 여름은 127일로 과거에 비해 크게 길어졌다는 사실을 ‘신기후평년값’을 통해 발표했다.

지난 3월25일, 기상청에서는 1991년부터 2020년까지 기온과 강수량 등을 평균한 새로운 ‘기후평년값’을 발표했다. 기후평년값이란 세계기상기구(WMO)의 기준에 따라 고정된 30년 간의 누년평균값을 10년 주기로 산출하는 기후의 기준값으로, 이제까지는 2011년에 발표한 1981년부터 2010년의 기후평년값이 사용돼왔다.

신(新) 기후평년값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12.8도로 이전 평년값보다 0.3도가 상승했고, 특히 최근 10년(2011~2020) 평균기온을 보면 1980년 대보다 2010년대가 0.9도 더 상승했다. 특히, 여름철의 변화가 크게 나타났는데 폭염과 열대야 현상 일수가 11.8일과 7.2일로 이전 평년값보다 각각 1.7일과 1.9일 증가했으며, 최근 10년 자료에서는 폭염 현상이 14.9일로 4.8일 증가, 열대야 현상은 9.9일로 4.6일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년보다 더울 것이라는 기상전망이 발표되면서 폭염과 열대야에도 더욱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아직 6월이라 더운 날이 많이 있긴 하지만 아침,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도 불고 쾌적한 편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장마가 끝나고 나면 햇볕이 아주 강하게 내리쬐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 기온이 높아지고,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많은 수증기가 유입돼 습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질 것이다. 또 여름밤에는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 무더위로 인해 밤잠을 설치게 될 때가 많아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연평균 열대야 일수는 7.2일이지만,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가속된다면 앞으로도 열대야 일수는 계속 증가하고 더운 날 또한 더욱 많아질 것이다.

이처럼 여름철 뜨거운 태양이나 높은 온도와 습도에 장시간 노출되면 신체조직이 즉시 반응해 심하면 사망에 이를 정도로 위험하다. 몸에 땀이 나고 체온이 상승하며, 심할 경우 현기증, 구토 등 전형적인 열사병이나 일사병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열대야가 발생하면 적절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며 불면증으로 인한 수면 부족은 결국 체력 저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름밤의 불청객인 열대야를 어떻게 하면 잘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 열대야의 불면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내 온도와 습도 조절이 중요하다. 특히 습도 조절만 잘하더라도 수면의 질이 좋아질 수 있다. 냉방기를 적절히 활용해 실내 온도를 22~25도로 유지하고 자주 환기를 시켜 냉방병을 예방하도록 하며, 자기 전 미지근한 물로 짧게 샤워를 하거나 멜라토닌 생성을 방해하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는 가능한 한 멀리하도록 한다. 그리고 평소 비타민이 풍부한 야채나 과일 등 수면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도심의 기온을 낮추기 위해 도로에 물 뿌리기, 쿨링포그시스템 설치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또 도시주변 산지, 계곡, 녹지대 등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찬 공기를 유입시키는 공간계획 연구도 활발하고, 도심 녹지공간을 조성해 기온 상승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강구하는 등 다각적인 대응책들도 논의되고 있다.

올 여름철 기상전망이 평년보다 덥다고 전망된 만큼, 정부 및 지자체가 서로 연계해 폭염 및 열대야 종합대책을 유기적으로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발디는 ‘사계’ 중 여름 1악장을 무더위에 지친 분위기로 연주하라고 지시했다. 여름의 시작은 어쩌면 여름의 절정보다 더욱 힘들지 모른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폭염 영향예보, 자외선지수 등 다양한 여름철 기상정보를 통해 여름의 시작을 잘 준비해 건강한 여름을 보낼 수 있길 바라본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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