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논쟁과 정치적 프레임

발행일 2021-08-05 11:24:1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폭염과 코로나19 확진자의 폭증으로 지쳐가는 일상이다. 폭염은 계절의 흐름 속에 무뎌지겠지만 코로나 이후의 삶은 어느 누구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정부의 수많은 정책실패는 항상 희생양을 요구하는 ‘내로남불’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겸손히 방역실패를 인정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거리두기라는 ‘강제적’ 행정명령으로 국민의 무한한 희생을 요구해 왔음에도 그 희생의 대가는 오직 국민세금으로 이뤄지는 재난지원금 뿐인 현실이다. 우리 속담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라는 하석상대(下石上臺)가 꼭 어울리는 것 같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부재의 정권이라는 비난에도 40% 전후의 대통령 지지율을 기록하는 이 곳이 작금의 대한민국이란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혹여 모든 정책의 어긋난 결과가 국민 개개인에게 있다고 믿는 ‘좀비’화된 어느 세력들 때문인가?

올림픽 경기가 지친 일상을 달래는 유일한 출구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5년 간의 지난한 시간과 수많은 문제에도 땀과 노력으로 극복한 선수들의 메달획득 소식이 들려온다. 올림픽 불모지로 여겨졌던 럭비 팀의 본선진출, 장비가 없어 패들(노)만 휴대한 채 빌려서 경기를 치른 카누선수, 사상 최초로 예선 2회전에 오른 육상 허들선수 등등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 메달 직전의 4위에 오른 높이뛰기와 다이빙 그리고 10대 수영 선수의 소식은 무력한 일상 속에서 희망을 일깨운다. 특히 여자양궁 단체전 9연패와 개인 최초 3관왕은 새로운 기록의 시작이며 올림픽 역사 속에 코리아를 영원히 각인 시키는 쾌거였다.

하지만 ‘좋은 일에는 흔히 마가 낀다’는 말처럼 외국 언론에 마저 보도되는 추태가 연일 사회 관계망을 달구고 있다. 여자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 선수에 대한 페미니즘 논쟁이 그것이다. 논쟁은 안산 선수의 인스타그램에 누군가가 ‘왜 머리를 자르나요?’라는 댓글을 쓰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수많은 욕설을 포함한 댓글이 달리고 남혐, 여혐의 젠더 대결로 번졌다. 여초 커뮤니티에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이 메달 박탈을 요구하고 있다’는 글들이 등장하고 사실 확인 없이 몇몇 언론들이 이를 퍼 나르면서 사회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더불어 언론들이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사실이 아닌 ‘양궁협회’까지 언급하면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됐다. 이젠 정치인들마저 가세해 2030세대를 남자와 여자의 대결로 ‘갈라치기’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사회(메일 쇼비니즘)에 대한 여성 평등과 여성 차별에 대한 저항인 페미니즘이 어느새 ‘남성을 혐오하고 여성 우월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왜곡돼 사용되고 있다. ‘미투’선언으로 수많은 남성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이 자살과 권력상실을 맛보면서 정치권 또한 페미니즘의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해자인 남성이 가진 힘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온 남성 중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립적 구조를 이용해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올림픽 시기이기에 안산 선수가 희생양처럼 여론몰이에 이용됐지만 실제 젠더 논쟁의 프레임은 ‘내 편 네 편’이라는 편 가르기의 연장선 위에 있는 듯하다.

최근 고인이 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 측이 제기한 고소를 비롯해 서울 종로구의 ‘쥴리 벽화’ 사태와 ‘여성 가족부 폐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연결고리가 분명 존재한다. 진보와 보수로 나눠진 유투버들의 무한 재생과 또 다른 젠더 갈등의 재생산은 정치적 프레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증거나 사실 확인은 이미 뒷전으로 밀리고 여론을 주도하는 분위기를 누가 잡느냐의 싸움처럼 보인다. 이러한 젠더 논쟁으로 위장된 정치 프레임은 전임 대통령들의 망신주기에서 이미 잘 나타나고 있다. 전 대통령 ‘박근혜 누드화’와 ‘노무현 운지’는 단순한 정치 풍자나 커뮤니티 일부 네티즌들의 일탈로 보기엔 의도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부정적 모습을 유도해 자신의 진영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만들어 가는 고도의 전술이 아닐 수 없다. 여야 모두 이러한 프레임을 자신들의 득표수로 연결시키려는 ‘유치한 놀이’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역과 세대 간의 갈등에서 남성과 여성간의 대결로 이어지는 갈등의 연속은 저급한 우리 정치 문화의 현주소인 것이다.

지난달 29일 언론 인권센터는 안산 선수와 관련된 논평에서 ‘숏컷도 페미니스트도 논란거리가 아니다.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논란이 된 상황에서 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주체 중 하나는 모순적이게도 언론’이라며 비판했다. 언론의 책임과 보도의 자세에 경종을 울리는 말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 뒤에 숨어있는 사악한 무리들의 진정한 의도를 놓친 점은 아쉽다. ‘양치기 소년’의 반복된 거짓말처럼 타성에 젖어버린 국민들을 ‘우민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닌지 다시 돌아볼 일이다.

김시욱 에녹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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