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울상이지만 포도나무는 웃었다||조선시대 첫 수확한 포도를 맏며느리에게 준 사연||내

▲ 최홍권·이원자 공동대표가 잘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보여주고 있다. 9월 20일께 당도가 17~20브릭스에 도달하면 수확한다.
▲ 최홍권·이원자 공동대표가 잘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보여주고 있다. 9월 20일께 당도가 17~20브릭스에 도달하면 수확한다.
조선은 충과 효, 남녀유별, 장유유서 등 유교적 가치관을 중시하는 유교 사회였다.

남성 중심의 세계였다는 것이다.

집 밖의 일이 남성들의 몫이었고 여성들은 육아와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했다.

여성들의 외출이 차단된 것은 아니지만 행동반경은 집안으로 좁아졌다.

경제권이나 발언권도 적었다.

조선 후기에는 장자상속제도로 바뀌면서 딸들에게 주어지던 재산상속권 마저 사라지는 등 모든 권한이 남성들에게 집중됐다.

당연히 여성들은 모든 일에서 후순위로 밀려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성에게 주어진 특별한 권한이 있었다.

첫 포도를 수확하면 먼저 사당에 바쳤고, 그 다음은 맏며느리 몫이었다.

가장(家長)도 아니고 장남도 아니었다.

철저한 남성중심의 유교사회에서 맏며느리에게 먼저 포도를 준 이유는 무엇일까.

가문의 번성이었다.

포도는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과일이다.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여성에게 우선권을 준 것이다.

김천에서 샤인머스캣을 재배하며 부자농부의 꿈을 키우는 강소농을 만났다.

‘송이송이농장’의 최홍권(56)·이원자(54·여) 공동 대표의 우여곡절 농사 이야기다. 부부는 1만㎡ 규모에서 샤인머스캣을 재배한다.

올해로 포도 재배경력 5년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9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본격적인 수확시기에 도달하면 매출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최홍권 대표가 잘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보여주고 잇다. 9월20일께 당도가 17~20브릭스에 도달하면 수확한다.
▲ 최홍권 대표가 잘 익어가고 있는 샤인머스캣 포도송이를 보여주고 잇다. 9월20일께 당도가 17~20브릭스에 도달하면 수확한다.
◆인생의 꿈을 위한 우여곡절 귀농

농업은 최 대표가 선택한 다섯 번째 직업이다.

첫 직장은 형님이 운영하던 부산의 수제구두 회사였다.

10년간 구두를 만들었다.

기성화가 늘어나면서 회사가 어려워지자 김천으로 옮겨서 자영업을 하다가 주유소를 경영했다.

이상한 점은 직업을 바꿀 때마다 농촌과 점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최 대표의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농사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고 했다.

주유소를 경영할 때는 벼농사를 함께 지으면서 귀농 연습을 했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자신감이 생기자 본격적으로 농사에 도전했다.

6천600㎡의 논을 임차해 양배추를 재배했으나 결과는 ‘폭망’이었다.

가격은 떨어지고 판로도 없었다.

종자부터 비료, 인건비 등 모든 경비가 빚이 됐다.

다시 콩 재배에 나섰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기술도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농사에 대한 꿈을 접고 세탁소를 차렸으나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자 농사에 대한 꿈이 되살아났다.

결국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귀농해 농부의 길로 들어섰다. 귀농 후 자두를 심었다가 모두 베어내고 5년 전부터 포도로 전환했다.

샤인머스캣이 한창 보급되던 시점이었다.

아직은 초보농부지만 많은 노력의 결과로 고품질의 포도를 생산하는 중견 농가로 자리 잡았다.

아내인 이 대표는 “남편은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 또 정신적인 부채를 졌다”면서도 “그러나 이제는 샤인머스캣 재배를 통해 두 가지 부채를 모두 청산했다”고 웃음 지었다.

이제 재배 기술도 웬만큼 익혔고 포도 재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고 했다.

▲ 이원자 대표가 수확을 앞두고 당도를 측정하고 있다.
▲ 이원자 대표가 수확을 앞두고 당도를 측정하고 있다.
◆작물의 기본은 땅

길지 않은 농사 경험이지만 작물 재배의 기본은 토양이라는 불변의 법칙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토양 관리에 집중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매년 토양 검증을 실시해 부족한 성분을 보충하고 땅심을 높이는데 주력한다.

땅을 먼저 가꾸기 위해 유기질과 미량원소들이 풍부한 퇴비를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유기물 퇴비에 톱밥을 혼합해 3년간 부숙 시킨 후에 사용한다.

톱밥은 반드시 참나무 톱밥을 사용한다. 여기에 유용미생물인 EM을 혼합한다. 자가제조한 각종 효소액도 넣는다.

땅심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자두를 재배하던 때부터 해오던 방식이다.

바닥에는 미세한 구멍이 뚫린 검은색 천공비닐을 깔아서 잡초발생을 억제한다.

미세한 구멍을 통해 토양이 숨을 쉬고, 지온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또 수분을 증발시켜 토양의 수분함량을 조절하는 효과도 있다.

여름철 고온기에 지온을 3~4℃ 정도 낮추며 뿌리의 활력을 높이는 효과도 낸다.

▲ 최홍권 대표가 새순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잘라낸 새순은 미생물과 당밀을 혼합해 6개월 간 숙성을 시킨 후 다시 포도나무에 되돌려준다
▲ 최홍권 대표가 새순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잘라낸 새순은 미생물과 당밀을 혼합해 6개월 간 숙성을 시킨 후 다시 포도나무에 되돌려준다
◆아내의 울상과 포도의 웃음

최 대표는 흔히 효소로 부르는 액비를 많이 사용한다.

나무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게 해 면역력을 높이고 병 발생도 줄이는 것이다.

아미노산 액비가 대표적이다.

가축의 혈분과 골분, 아미노산, 미생물, 당밀을 혼합해 1개월 이상 발효과정을 거친다. 미역과 다시마를 이용해 해초 액비도 만든다.

해초류는 물로 세척해 염분을 제거하고 3개월 정도 숙성시켜 사용한다.

해초에 많은 무기물 등 미량원소를 활용하는 것이다.

포도 재배 과정에 나오는 모든 부산물은 다시 포도나무에 되돌려 주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선별 과정에서 발생한 흠과와 저급품의 포도는 설탕과 혼합해 3년 동안 숙성시킨 후 토양에 관주하거나 옆면살포를 한다.

새순을 정리하는 과정에 잘라낸 모든 가지(신초)도 버리지 않는다.

물과 미생물, 당밀을 혼합해 6개월 간 숙성을 시킨 후 다시 포도나무에 되돌려준다. 최 대표의 효소 사랑은 종종 부부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대표가 가정에서 음료수로 먹기 위해 만들어 놓은 효소를 최 대표가 몰래 포도나무에 뿌리기 때문이다.

매실과 오미자, 구지뽕, 개복숭아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숨겨도 찾아내어 뿌린다.

“처음에는 이 문제로 자주 다퉜지만, 이제는 포기하고 좀 더 깊숙한 곳에 숨기는 방법 밖에 없다”며 “남편의 농사법을 신뢰하기 때문에 이제는 순순히 따른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 최홍권·이원자 공동대표가 윤광서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왼쪽)으로부터 샤인머스캣 재배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 최홍권·이원자 공동대표가 윤광서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왼쪽)으로부터 샤인머스캣 재배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최고의 포도를 위한 노력

모든 포도는 직거래로 판매한다.

공판장을 통하지 않고 전량 직거래로 판매하는 것은 품질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수확량이 크게 늘어나지만 계속 직거래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포도의 품질은 신선도와 당도에 의해 결정된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당일 수확 당일 배송을 원칙으로 여긴다.

문제는 당도다.

샤인머스캣은 17브릭스 이상의 당도와 머스캣향이 나야 한다.

고당도의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 작업 과정을 구분한다. 모든 송이마다 당도를 측정하고 수확한다.

당도가 낮은 송이는 봉지에 날자와 당도를 기록해 두고 수확 시기를 뒤로 미룬다. 당도 측정은 이 대표가 맡고 수확과 운반은 최 대표가 맡는다.

당도 측정에는 세밀한 손길이 필요하고 수확과 운반은 강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역할 분담이다.

선별 과정에 흠과와 미숙과 등 불량품은 골라서 효소로 만든다.

이런 정밀한 선별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하루에 200개 상자(상자 당 2㎏) 정도로 수확량이 적다.

비록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고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감수한다. 지난해 700개의 상자를 주문했던 판매 전문 벤더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벤더가 “포도 주산지 10개 농장의 포도를 구입해 맛을 보고 주문을 결정했고, 판매 후 단 한 건의 클레임도 없었다”며 “앞으로 계속 구입 할 계획이니 많이 도와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소비자들로부터 샤인머스캣의 고품질을 완벽히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지난해 추석 직전에 최고 가격이 형성됐으나 당도가 미달 된다는 판단에 따라 수확을 추석 이후로 미뤘다.

추석 이후 가격이 떨어져 소득은 줄었으나 신뢰도는 높아졌다. 긴 안목으로 본 것이다.

▲ 샤인머스캣 포도밭 전경. 녹색 봉지는 수확 전에 벗긴다.
▲ 샤인머스캣 포도밭 전경. 녹색 봉지는 수확 전에 벗긴다.
◆샤인머스캣 화장품

최 대표의 꿈은 최고 품질의 샤인머스캣을 생산하는 포도명장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 재배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샤인머스캣을 활용해 화장품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고, 이미 연구 중이다.

샤인머스캣의 향과 보습력을 응용해 스킨과 로션 등 기초 화장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예전에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공부한 화학 분야 지식이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소비자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판매를 촉진시키고 MZ세대를 새로운 고객으로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활동에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할애하고 있다. 현재 최 대표는 마을 이장, 이 대표는 부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샤인머스캣 송이. 녹색의 옥구슬처럼 보인다.
▲ 샤인머스캣 송이. 녹색의 옥구슬처럼 보인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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