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앞두고 정치인 현수막 네거리 점령…시민 눈살 찌푸려도 별 제재 방법 없어

발행일 2021-09-16 17:51:4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옥외광고물법상 불법, 공직선거법상 합법…관련법 상충

명절 지나면 자진철거 않아…구청 행정력으로 일일이 수거

추석을 앞두고 대구 도심 주요 교차로 곳곳이 지자체장이나 의원 등의 명절 인사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6일 대구 도심 곳곳의 도로시설물과 가로수 등에 걸려있는 명절인사 현수막들.


추석을 앞두고 대구시내 주요 네거리에 정치인들의 ‘명절인사’ 현수막이 어김없이 난무하고 있다.

이같은 현수막은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불법이지만 관련법이 상충되면서 행정기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현역 공직자 현수막 상당수가 지자체 예산으로 집행됨에 따라 명절 현수막 설치에 대한 근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16일 오전 9시께 대구 달서구 죽전네거리 일대.

대구도시철도 죽전역 서편 출구 공사 현장에는 국회의원, 구청장, 구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현수막이 빼곡히 네거리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곳은 현재 공사로 인도 폭이 줄어있어,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현수막과 차량 사이를 곡예하듯 지나갔다.

보행자 최준환(34·달서구)씨는 “죽전역 서편 출입구 공사로 죽전네거리 전체가 안전사고 우려가 큰데 정치인들의 현수막 때문에 위험이 가중된다”고 꼬집었다.

명절 앞 현수막 홍수는 죽전네거리만의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정치인의 현수막이 지정 게시대가 아닌 곳에 설치되는데 공직선거법과 옥외광고물법이 상충되는 것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되풀이 된다는 점이다.

‘옥외광고물 관리법’에 따르면 지자체가 설치한 현수막 지정 게시대가 아닌 도로시설물, 가로수 등에 내걸린 현수막은 불법으로 간주하고 과태료 처분 대상이 된다.

하지만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입후보 예정자의 선거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현수막을 붙이는 데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67조에는 ‘후보자는 선거운동을 위하여 해당 선거구 안의 읍·면·동 수의 2배 이내의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다’는 규정만 있을 뿐 입후보 예정자의 현수막 설치 장소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

이 법 때문에 선거기간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주요 네거리를 점령하듯이 명절이 되면 정치인들의 현수막이 아무런 제재없이 내걸린다.

명절 연휴가 끝난 뒤 입후보 예정자들이 손수 회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일선 지자체 담당자들이 일일이 떼야 한다. 민원 또는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정비하기로 한 구역 내 현수막을 일괄 수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불법 현수막 정비를 도맡는 지자체 일선 공무원들은 난처하다.

‘명절맞이’ 현수막이 명절이 다가오면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지만 지역 정치인들 눈치 보기에 급급해 쉽사리 철거하지도 못한다.

A구청 담당 공무원은 “지난 설 연휴 직후 철거한 현수막도 평소의 2배를 훌쩍 넘겼다”며 “관리법에 따라 회수를 하려 하지만 선거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정치인들의 항의 전화가 줄을 잇는다”고 하소연했다.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은 “시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법을 어기고 있다”며 “공직선거법과 광고물법의 충돌로 인해 매년 되풀이되는 현수막 게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종민 기자 jmkwo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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