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나 추석 명절이면 꼭 생각나는 사람들과 장소가 있다.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서 카자흐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타지키스탄 등에 10여 차례 해외 의료봉사를 다녀왔고, 카자흐스탄에만 4번 방문했지만, 우슈토베에서의 의료 진료는 특별한 의미를 느낀다.

2019년 10월9일 새벽 우슈토베 청년센터의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기차의 경적소리에 한없이 가슴이 떨렸다. 80여 년 전 이날,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해 이곳에 처음 도착한 고려인들의 한 맺힌 슬픔과 아픔의 울음 소리가 마음을 파고 들어, 새벽 내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전날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큰 언덕이라는 뜻의 ‘바스토베’에 고려인들이 처음 정착했던 토굴과 이국땅에서 잠든 공동묘지를 방문했던 탓이다. 세찬 바람 속에 녹슨 쇠로 된 비석과 둘레석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고, 기념비에는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 방문해 참배하며 위로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나라를 잃은 백성의 슬픔과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명령으로 연해주에 있던 고려인이 강제 이주해 처음 우슈토베에 도착한 것이 1937년 10월9일이다. 연해주의 이르쿠츠크역에서 출발해 7천332㎞를 한 달간 달려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가축수송용 열차라고 했으니 얼마나 열악한지 상상이 간다. 22만여 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고, 우슈토베에는 발하슈 호수(Balkash Lake)로 유입되는 카라탈강이 있어 3만2천여 명의 고려인들이 이곳 우슈토베에 도착했다. 추운 황무지 벌판에 내려진 고려인들은 토굴을 파고 갈대를 엮어 은신처를 마련하는 등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애썼지만, 겨울을 지내면서 혹한과 기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카탈라강에서 물길을 만들어 논농사를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논농사는 위도 41도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억척스러운 이주 고려인으로 인해 위도 43도에서도 벼 생산이 가능해졌다. 한국인들의 교육열을 어디서나 빛을 발해서 카자흐스탄의 재계와 교육계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으며, 고난을 이겨내는 DNA가 유전자 속에 새겨져 어디서나 성실과 끈기로 많은 열매를 맺는 민족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됐다.

현재 우슈토베 지역에는 2세대 고려인들이 많이 남아 있으나, 소련이 붕괴되고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새로운 직업과 교육의 기회를 찾아 이곳을 떠나고 있었다. 그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 2014년에 우슈토베 청년센터를 세운 박희진 선교사의 요청으로 달라니바스톡에서 4일간 545명의 환자들에게 1천170건의 진료를 시행했다. 고려인뿐만 아니라, 카작인, 러시아인, 중국인 등 다양한 종족이 진료실을 찾았고, 통역해주던 고려인들을 통해 같은 민족으로서의 아픔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었다. 박 선교사는 79세의 여성으로 1937년 강제 이주 당시의 상황을 후손들이 기억하고 교육할 수 있도록 고려인들이 연해주에서 처음 이곳에 도착해 살았던 토굴과 생활했던 집을 토굴체험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자기 선조의 고난을 잊지 않기 위해 통곡의 벽 뿐 아니라 마사다 요새와 야드바셈 기념관을 반드시 방문하도록 돼있고, 초등학교 입학전, 군입대전, 결혼하기 전에 반드시 이 두 곳을 찾아서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후손들을 교육하고 있다. 마사다 요새는 이스라엘 남쪽, 유대사막 동쪽에 우뚝솟은 450m의 바위 절벽 꼭대기에 지어진 천혜의 요새로, AD73년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당시 끝까지 로마군에 항거하던 유대인 저항군이 로마군의 공격으로 패배가 임박하자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960명 전원이 자살한 곳이다. 또 야드바셈(Yad Vashem)은 홀로코스트 박물관으로 나치 치하에서 강제수용소의 가스실에서 학살 당한 유대인들의 이름을 영구히 보존하는 하는 곳이다.

20세기 초 암울한 우리의 현실을 잊지 않고, 약소국으로 당했던 어려움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힘을 충전하는 장소로 용정의 명동촌,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과 함께 이곳 바스토베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진료를 위해 통역하면서 평생 잊지못할 음식들을 준비해주셨던 고려인 할머니들이 코로나19로 많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박 선교사도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 마음이 아팠는데, 속히 회복해서 어려워도 늘 환하고 밝게 웃던 그 모습을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도한다.

김준식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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