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알면서도 묵언으로 재촉하니/무장 힘에 겨워 제자리 맴돌면서도/스프링 튀어 오르는 왕성함을 꿈꾼다//강요는 아니지만 할 수밖에 없는 나날/산비탈 흙으로 살 수밖에 없는 나무/방전된 등을 떠미는 그 길 앞에 서 있다//둥지에 별 총총 몸을 풀고 가는지/은하수 이운 생애 그 깊이 무한하다/앙상한 별빛 페달을 밤새 감는 태엽 소리

「시조미학」 (2021, 가을호)

김지욱은 대구 달성 출생으로 2018년 한국동서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충전기’는 자화상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런 작품을 흔히 주지적이라고 한다. 이성이나 지성, 합리성 따위를 중히 여기는 것이므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지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고뇌하는 일을 통해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충전기’는 잘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당신을 두고 알면서도 묵언으로 재촉한다고 토로한다. 말이나 글이 아닌 묵언은 더욱 마음을 옥죄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상황으로 볼 때 화자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처해진다. 본인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묵언에 응답을 해야 한다. 그것은 곧 살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장 힘에 겨워 제자리 맴돌기를 거듭하면서도 한편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왕성함을 꿈꾸고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찾은 때문이다. 상대방의 묵언은 강요까지는 아니지만 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그렇기에 산비탈 흙으로 살 수밖에 없는 나무와 다름없다. 그리하여 방전된 등을 떠미는 그 길 앞에 서서 사유한다. 이를 통해 둥지에 별 총총 몸을 풀고 가는지 은하수 이운 생애 그 깊이가 무한한 것을 바라본다. 마지막 수 종장은 자화상에 대한 하나의 명징한 은유로 마무리 된다. 즉 앙상한 별빛 페달을 밤새 감는 태엽 소리다. 페달도 그냥 페달이 아니라 별빛 페달이다. 이 구절에서 화자가 끝까지 견지하고자 하는 삶에의 의지와 꿈을 읽는다. 이처럼 ‘충전기’는 읽는 동안 삶의 진정성에 대해 오래 숙고하게 한다. 순탄치 않은 인생 여정에서 자칫하면 육신과 정신의 힘이 방전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와 맞닥뜨릴 수 있다. 그런 때를 대비해 미리 충전의 기회를 가진다면 무기력한 심신을 다시금 다잡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쓰는 이들은 늘 언어와의 샅바싸움을 해야 한다. 이 일은 참으로 고되다. 자업자득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지만 이 일이 숙명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단시조 ‘텅 빈 언어’는 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밟히는 어리석은 나침반이어서 무수한 그들과 방향만 같을 뿐이라고. 그리고 늘 손끝에 걸려드는 건 난시만 헤집는 소리, 라고 단언한다.

그는 또 ‘지구휴식기’에서 휴일도 쉼 없이 달려온 지평선에 이른 새벽 찔레꽃 산머리 돋을양지 피돌기 반짝 떠오른 하얀 꽃이 환하다, 라고 노래하면서 꿈틀대는 바이러스 봄 산을 덮치고 출렁이는 신열은 온몸을 적시더니 걸쳐온 몸뚱어리를 할퀴며 씻어낸다, 라고 코로나 사태를 육화하고 있다. 그리고 헐거워진 헤진 몸 지푸라기로 흔들릴 때 다 닳은 바람꽃도 놓쳐 버린 시간도 돋을볕 보듬어 안고 쉬어가는 중이라고 끝맺는다. 화자는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지구휴식기가 도래한 것으로 본다. 긍정적인 시각이다.

내밀한 자아성찰과 더불어 시대상황을 직시하고 밀도 높은 형상화에 힘쓰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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