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Leaves of Grass)/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발행일 2021-09-27 09:52:5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한 아이가 두 손에 잔뜩 풀을 들고 와서 “풀이 뭐꼬?”하고 묻는다. 내 어찌 그 물음에 답할 수 있으리오. 나도 그 아이처럼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으리니. 나는 그것이 필연코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짠 내 천성의 깃발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것은 하느님의 손수건이리라. 하느님이 일부러 떨어트린 기념품이고 어느 귀퉁이에 소유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면 그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을 터이다. 한편, 나는 추정하노니- 풀은 그 자체가 어린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아이인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그것은 모양이 한결같은 그림문자일 수 있다. 넓은 지역에서부터 좁은 지역에 이르기까지 싹이 틀 뿐만 아니라 흑인과 백인, 캐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하인, 아무도 가리지 않으리니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또 받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돋아난 깎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털이다. 너 부드러운 풀이여~ 나, 너를 고이 다루나니 너는 젊은이의 가슴에서 움이 트는 건지도 모른다, 내 만일 너를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너를 사랑했으리니. 어쩌면 너는 늙은이나 어머니의 무릎에서 갓 떼어 낸 갓난아기에게서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 자, 또한 여기에 그 어머니의 무릎이 있다. 풀은 나이 든 어머니의 흰 머리로부터 나온 것 치고는 검은 편이니, 늙은이의 빛바랜 수염보다 더 검고, 연분홍 입천장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그보다도 더 검다. 아, 나는 결국 그 숱한 말들을 이해하나니, 그 말들이 아무런 뜻 없이 입천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안다. 젊어서 죽은 남녀에 관한 암시를 풀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뿐만 아니라 늙은이와 어머니와 그리고 그들의 무릎에서 떼어 낸 갓난아이들에 관한 암시도 풀어내고 싶다. 그 젊은이와 늙은이가 어떻게 되고 어머니와 어린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어딘가에 잘 살고 있을 터다. 조그마한 풀잎일지라도 그것은 진정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시일 것이니, 만일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삶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고 종점에서 기다렸다가 삶을 붙잡진 않으리라. 삼라만상이 앞으로 멀리 나아갈 따름이고 종말은 없을진대, 사람의 생각과 달리 죽음은 어쩌면 행복이리라.

「나 자신의 노래」 6에서

풀잎이 무슨 의미일까. 선문답의 화두로 삼을 만하다. 풀밭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하다. 생명이 살아 숨 쉰다. 풀은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표징이다. 풀은 초록을 만들고 산소를 뱉어낸다. 풀밭엔 초식동물이 풀을 뜯고 곤충이 먹이를 찾느라 분주하다. 각종 포식자는 배를 채우기 위해 눈을 번득인다.

풀은 희망의 깃발이다. 내일을 살아갈 삶의 에너지를 초록의 바다에서 충전한다. 풀은 신이 일부러 흘려준 생명의 씨알이자 주도면밀하게 설계된 비장의 카드다. 때를 맞춰 먹이를 마련하는 일이 성가시고 짬을 내기도 힘들어 고심 끝에 고안해낸 회심의 역작이다. 풀은 생명을 낳은 어머니이고 동시에 생명을 받은 아가다.

풀은 남녀노소 우수마발 차별하지 않는 평등과 정의의 화신이다. 스스로 실천하고 한 점 의혹도 없다. 그 근원이나 근본을 가리지 않고 풀색으로 치장하고 시종일관 한 마음을 보인다. 풀의 시위는 신의 뜻을 상징적으로 전해주는 듯하다. 죽음이 생명으로 이어지는 암시는 영원한 생명의 은유다. 끝은 시작이고 시작은 끝이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고 행복일지 모른다.

오철환(문인)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