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신천을 걷다, 수성을 만나다’란 타이틀로 진행된 올해 ‘길 위의 인문학’이 지난 주말 마무리됐다. ‘길 위의 인문학’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국비 공모사업으로 현장 속 인문학, 생활 속 인문학을 구현한다. 국비 지원액은 1천만 원으로 많지 않지만, 공공도서관에서는 지역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인문학 강연과 함께, 강연의 연장선에서 여행도 즐길 수 있는 탐방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통해 사람, 책, 현장이 소통하는 장(場)인 것이다.

용학도서관도 ‘길 위의 인문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가 관여한 2016년부터는 매년 주민들이 우리 지역을 제대로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지역의 개념을 좁게는 수성구, 넓게는 대구 및 경북으로 잡고 있다. 2016년에 ‘수성GEO: 수성구, 우리 고장의 인문지리’, 2017년에 ‘대구 유학, 수성구에서 씨 뿌리고 꽃 피우다’, 2018년에 ‘수성구 선비정신에서 비롯된 대구정신을 찾아서’, 2019년에 ‘대구·경북 독립운동 영웅들과 청산되지 않은 과거’, 2020년에 ‘대구 제대로 알기’, 2021년에 ‘신천을 걷다, 수성을 만나다’를 진행했다. 2017년에는 ‘길 위의 인문학’ 사업평가에서 우수도서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역에 집중하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다. 지역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공부하지도 알려주지도 않는 곳이 부끄럽게도 우리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능금도시’, ‘섬유도시’, ‘대통령을 많이 배출한 도시’ 등으로 불렸지만 이젠 해당사항이 없거나, 자랑스럽지 않은 이력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 뒤로는 ‘수구도시’, ‘고담시티’ 등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지역 전반적으로 미흡한 편이었다. 대구시가 지역학을 챙기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대구시교육청이 지역 관련 교재를 발간한 것은 지난해의 일이다.

수성구가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것도 마뜩잖다. 땅값과 아파트값이 비싼데다 자녀의 대학입시에만 몰두하는 ‘졸부동네’라고 비아냥대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수성구의 숨겨진 가치를 찾기 위해 시작한 프로그램이 바로, 수성구의 인문지리 요소요소를 살펴보는 2016년 ‘길 위의 인문학’이었다. 당시 첫 번째 탐방으로 비와 바람을 피했던 신천의 바위그늘 등 수성구의 선사시대 유적을 찾아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손주, 자녀, 며느리, 사위에게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공부하자”며 참가자들과 의기투합했던 일이 기억난다.

지역을 화두로 삼는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면서 얻은 이점은 두 번째 이유다. 강사의 일방적인 강연이 아니라, 참가자인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참여가 많은 편인 용학도서관의 경우 지역의 역사나 스토리에 대해 강사가 미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을 수정해 주는 지역주민도 적지 않다.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는 강사는 강연을 하는 중간중간 어르신들이 기억을 되살려 의견을 내도록 이끈다. 젊은 강사 입장에서는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하기도 한다. 강연 분위기는 당연히 좋아진다.

지난 주말 진행된 올해 ‘길 위의 인문학’ 마지막 탐방에서는 집단지성이 발현됐다. ‘물의 도시, 대구’란 주제로 수성못 주변에서 탐방이 진행되던 중 “수성못의 물은 신천에서 취수된 물이 도수로를 통해 채워진다”는 강사의 설명이 있자, “범물동 진밭골에서 내려온 물이 두산오거리 근처에서 범어천이 되는데, 가까운 곳에서 진밭골 물로 수성못을 채우면 쉽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토론회가 열렸고, ‘진밭골은 건천이어서 수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량이 많은 신천의 물을 취수하는 것’이란 중론이 모아졌다.

탐방 이후 도서관에서 열린 후속모임에서는 참가자들의 신천과 ‘길 위의 인문학’에 대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신천에 버스킹 무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신천 변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지 않도록 하자”, “내방가사로 신천을 기록하겠다”, “우리 지역을 하루 종일 걷고, 먹고, 노래하고, 기록하자”, “학생들에게 우리 지역을 가르쳐야 한다”, “신천에 고인돌 채석장 안내판을 설치하자” 등이 그것이다. 후속모임을 지도한 영남대 최재목 교수는 “대구의 획일적인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옛 역사를 호출해 다문화시대에 걸맞는 균형감각을 되찾아야 한다”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을 학습하는 동아리 또는 연구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지역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지역사회 전반적으로 진행되는 한편, 평생학습 차원에서 학교와 공공도서관이 학생들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우리 지역을 교육하면 주민들은 자긍심을 갖게 된다. 시민역량 강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역공동체가 강화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지역은 이웃을 배려하면서 살만한 곳이 된다고 믿는다.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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