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

… 소란을 만난 건 선배의 출판기념 모임에서다. 집을 보러 왔다가 선배와 만났다고 했다. 산기슭에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15년 전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던 탓에 소란은 환영받지 못했다. 소란의 결혼 소문에 낙담한 선배는 낙향하여 전전하다가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밤에는 소설을 썼다. 선배와 가끔 만나 커피를 마셨지만 소란의 이야기는 금기였다. 선배는 아직 소란을 잊지 못했다. 학창시절 소란과 나는 책을 읽었고 책을 읽다 글을 썼다. 소란은 연애하다가 결혼했고 나는 대필하다가 졸업했다./ 그 며칠 후, 소란의 전화가 왔다. 커피나 한잔 하러 집에 온다나. 소란은 외제차를 타고 산골마을까지 찾아왔다. 나는 초라한 삶을 숨기지 않았다. 38살이지만 소란은 여전히 예뻤다. 우린 15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탐색전을 벌였다. 나는 이혼해서 혼자 산다고 고백했다. 소란은 2번 이혼하고 자식 둘 딸린 세 번째 남편과 살고 있었다. 변호사 남편은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비 내리던 일요일 밤, 소란이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술과 안주거리를 사들고 와선 하룻밤 자고가게 해달라고 했다. 허기진 사람처럼 사발면을 허급지급 먹으며 틈틈이 술을 들이켰다. 술이 오르자 소란은 쉼 없이 떠들었다. 선배를 차버린 게 아니라고도 했다. 가족의 교통사고로 졸지에 고아가 된 사연, 폭력에 시달리다가 유산하고 첫 남편과 이혼한 사연, 외도 때문에 두 번째 남편과 다시 이혼한 사연, 자식 둘 딸린 변호사와 결혼한 사연 등을 주절주절 읊어댔다. 나는 행복하지 않아 결혼했지만 함께 행복하지 않아 이혼했다고 말해줬다. 당당한 소란의 삶이 부러웠다. 소란은 혼자 편하게 살아가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한참 검색을 하더니 핸드폰을 내밀었다. 소란의 사생활 사진과 함께 기막힌 문구들이 적혀있었다. 그런 사진이 하나가 아니었다. 범인은 남편의 아이들. 험난한 삶을 소란은 견뎌내고 있었다./ 어버이날 본가에서 며칠 쉬다 올 생각으로 집을 나서는 순간 소란의 전화가 왔다. 집에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집이 비니 맘껏 쓰라고 했다. 포스트잇을 현관에 붙여두었다. ‘울고 가라.’ 선배 문자를 받고 북카페에 들렀다. 선배는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글이 안 써진다고. 나는 선배 앞에 서면 슬펐다. 선배도 나를 의지했다. 선배와 난 각자의 상처 안에서 비명만 질렀는데 소란은 구멍을 찾아다녔다. 소란의 등장으로 선배의 그리움이 터져버린 모양이다. 나는 소란의 15년에 대해 침묵했다./ 서울 일정을 앞당겨 돌아왔다. 의지할 구석이 없는 소란이 걱정됐다. ‘울고 가라’ 했지만 혼자 울어도 될까. 서둘러 돌아왔지만 소란은 집에 없었다. 현관에 붙여놓았던 포스트잇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소란의 답글이 정갈하다. ‘울고 간다.’…

청춘의 삼각관계는 잘 풀리지 않는다. 마음이 마음 같지 않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엇갈린 사랑은 아프다.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아는 까닭에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은 야속하고 슬프다.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면 그만 잊을 만도 하건만 일편단심 잊지 못하니 답답하고 원망스럽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또 어떤가. 행복하지 못해서 함께 살다가 함께 행복하지 못해서 헤어지는 사연이 쿨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쇠를 달구고 때린 만큼 단단해지듯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지만 아픔은 싫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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