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잡겠다고 하더니 무주택자 내집마련 사다리조차 없애 || 한치앞 못 내다본 오락가락 정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17일자에 세계적 열풍을 몰고 온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조명하면서 한국 사회의 잔혹한 현실을 반영했다고 소개했다.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우승 상금을 타겠다며 목숨을 걸고 펼치는 생존 게임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 했다. 그러면서 르몽드는 한국의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웃돌고 2014∼2018년 사이 서울 마포대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800여명 중 다수가 빚에 쪼들려왔다고 덧붙였다.

가계부채의 심각한 현실은 그저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거다.

지금 우리는 각종 대출과 수단을 끌어모아 부동산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세태에 내몰려 있다. 월급쟁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소상공인 등 평범한 인생들의 통장 두께는 그대로인데 집값은 천정부지 치솟았다.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한 요즘이다.

서울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9억 원을 넘는다는 소식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2017년 6월 15.7%에서 올해는 56.8%로 4년만에 3.6배 급증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의 아파트값이 문재인 정부 들어 가파르게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무주택자들이 대출 없이 내집을 마련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설상가상 정부가 무주택자의 내집마련 사다리가 될 대출을 잠갔다. 금융당국이 가계 빚 관리를 위해 신규 대출을 제한토록 메시지를 던지자, 은행들은 일제히 중도금이나 잔금 대출, 전세대출 등을 중단하고 있다.

대출을 받지 못해 입주를 못할 처지에 놓인 딱한 사정들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고 가계대출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내놓은 가계대출 관리방안이 애먼 실수요자의 자금줄마저 닫는 결과로 초래했다.

급기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제발 살려달라’는 호소까지 등장했다.

사연은 이렇다. A씨는 내집마련이라는 꿈을 안고 힘든 생활에서도 청약통장 빈칸을 채우며 살았다. 2019년 공공분양 아파트에 당첨되면서 정부의 당시 주택자금 정책을 믿고 금전계획을 세웠다. 퇴근 후 그는 공사현장을 돌아가고, 주말이면 아침밥도 먹기 전에 운동한다는 핑계로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입주하는 날을 기다렸다. 분양당시 정책을 믿고 계산기를 두들기며 자금 계획을 세우며 힘들게 내집마련을 하기로 결심하고 버텨온 그에게 지금 돌아온 현실은 실거주자임에도 ‘투기꾼’ 딱지를 붙여 대출 규제를 받게 돼 입주 조차 어렵게 될 처지 뿐이□다. ‘제발 살려달라’는 그의 말이 과장은 아닌 듯 하다.

A씨의 심정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하고도 남는다. 벼랑끝에 몰린 A씨 같은 처지가 전국에서 속출하는 중이다.

가계대출 관리방안이 주택시장의 불안을 가중하는 꼴이 됐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 계획을 한 차례 수정해 전세대출을 총량규제 배제한다고 한걸음 후퇴했다. 전세 입주를 앞둔 수요자들에게는 그나마 한시름 놓게 할 뉴스다. 그리고 당국은 조만간 새로운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그런데 묻고 싶다. 지금같은 상황이 예측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대출을 잠그도록 금융권을 압박할때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예상하지 못했냐는 것이다. 예상 못한것도 문제, 알면서 추진한 것은 더 큰 문제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정책이 애먼 실수요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반복하는 정책으로 시장에 혼선은 물론 정책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문재인 정부들어 부동산 대책이 20여 차례 나온 것만 봐도 그렇다. 처음부터 어긋난 단추가 아닌지 자기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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