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71개 버스 회차지 중 양변기 비율 20% 미만||재래식 화장실도 11개소, 아예 없

▲ 17일 대구 수성구에 있는 한 노상 차고지의 모습. 동그라미 쳐진 부분은 종점을 이용하는 기사들을 위해 설치된 재래식 간이화장실.
▲ 17일 대구 수성구에 있는 한 노상 차고지의 모습. 동그라미 쳐진 부분은 종점을 이용하는 기사들을 위해 설치된 재래식 간이화장실.
지난 17일 오전 8시께 대구 수성구의 한 시내버스 노상 차고지.

이곳은 수성구 사월동에서 북구 조야동을 잇는 403번의 종점이다. 403번을 운행하는 버스기사들은 용변을 해결하려면 ‘재래식(배설물이 정화조에 저장되는 방식)’ 간이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간이화장실에 다가서자 지독한 암모니아 향이 코를 찔렀다. 환기창은 있었지만, 간이화장실이 시민들이 오가는 인도와 인접한 탓에 창문을 열면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버스기사 A씨는 “한여름이면 화장실 내부 온도가 45℃까지 치솟는 데다 악취와 벌레까지 꼬여 1분도 못 버틴다”면서 “도저히 화장실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노상 방뇨를 택할 때도 있다. 버스기사를 떠나 인간으로서 자괴감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수세식 화장실에 걸터앉아 용변 보기.’

현대사회 대부분 직장인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지만, 대구 시내버스 기사들에겐 허락되지 않는 꿈 같은 일이다.

기사들은 매년 화장실 인프라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관리주체인 대구시는 예산 타령만 늘어놓고 있어 이 같은 불편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18일 대구시 등에 따르면 대구 시내버스 회차지 72개소 중 양변기(걸터앉아서 대소변을 볼 수 있는 수세식 변기) 시설을 갖춘 곳은 13개소에 불과하다.

전체의 40%에 달하는 29개소가 위생 문제 및 이용이 불편한 화변기(쪼그려 앉는 형태의 변기) 형태이며, 그중 11곳은 악취와 더위·추위 등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재래식 간이화장실이다.

남구 대덕맨션 등 공원, 지하철역, 아파트 상가 등에 있는 화장실을 무단 이용해야 하는 곳도 19개소다. 동구 안심역 인근 등 아예 화장실이 설치돼 있지 않은 곳도 11개소에 달했다.

대구버스노동조합 김종웅 조직국장은 “매년 대구시에 화장실 등 기사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다”면서 “용변 문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최우선으로 보장돼야 하는 생리적 욕구다. 대구시가 보여주기식 정책을 남발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화장실 개선에는 예산 투입을 망설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대구시는 기존 재래식 화장실을 신규 재래식 화장실로 바꿔놓는 땜질식 처방에 그치고 있다.

시는 회차지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이거나 타인의 토지를 임대해 사용하다 보니 수세식 화장실 설비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개발제한구역은 허가 자체가 나지 않고, 임대 부지는 소유주가 임대를 해지하면 화장실 건설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결국 수세식 화장실로 설치·교체하려면 사유지인 회차지를 시에서 매입하는 수밖에 없지만, 예산 부족으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현재 화장실 대부분이 사유지에 속해 있어 시설 개선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내년에도 딱히 화장실 시설 개선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없다”고 말했다.

▲ 대구 수성구의 한 노상 차고지에 설치된 재래식 간이화장실. 지독한 악취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기도 힘들 정도였다.
▲ 대구 수성구의 한 노상 차고지에 설치된 재래식 간이화장실. 지독한 악취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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