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 기상청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을’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청명한 하늘? 노란 국화? 울긋불긋 단풍? 하늘하늘 코스모스? 각자 내 마음속 1번이 무엇이든 간에 가을은 볼거리가 다양한 계절임에는 틀림없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그 황홀한 볼거리를 찾아 떠날 생각에 들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에게 가을은 추수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상강(10월23일, 서리가 내리는 시기)을 지나면서 한 해 동안 가꾼 농작물을 무사히 추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시기다.

서리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상의 물체 표면에 얼어붙은 것으로, 지표면이 복사 냉각으로 차가워지면 지표에 인접한 공기 중 수증기가 고체 상태인 얼음으로 승화하면서 생기게 된다. 우리 눈에는 잔디나 나뭇잎, 자동차 유리 등에 그저 하얗게 얇은 얼음막이 생긴 듯 보이지만, 실은 비늘모양, 바늘모양, 새털모양, 부채모양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10월경 첫서리가 시작돼 이듬해 4월 마지막 서리가 내린다. 기상학적으로 서리는 한 가지 현상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강도에 따라서 무서리와 된서리, 시기에 따라서 일찍 내리는 올서리, 늦게 내리는 늦서리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편 1년 중 서리가 내리지 않는 기간은 ‘무상(無霜)기간’이라 부른다. 이 무상기간은 작물 재배가 가능한 한계기간이기에 농업 분야에서는 중요한 시기이다. 서리가 식물에 내리게 되면 잎이나 꽃 등의 세포 조직이 동결되거나 손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잎보다는 꽃이나 과실이 피해를 받기 쉽다. 따라서 노지에서 자라는 과실수의 경우, 무상기간을 벗어난 봄철 개화기와 가을철 수확기에 서리로 인한 막대한 냉해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서리는 어떤 조건에서 발생할까? 우선 하늘이 맑아야 한다. 또 수증기의 승화가 잘 일어날 수 있도록 바람 없이 고요해야 한다. 기온조건은 낮 최고기온이 18℃ 아래로 내려갈 때이고 저녁 6시의 기온이 7℃ 이하, 밤 9시의 기온이 4℃ 아래로 떨어지면 서리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봄과 가을철은 이동성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아서 맑고 바람 없는 날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서리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올해도 세계 곳곳에서는 서리로 인한 피해가 있었다. 지난 4월, 서리가 프랑스 전역을 덮쳐 주요 포도 재배지의 80%가 영향을 받았고, 7월에는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의 미나스 제라이스 주 일대에 갑작스러운 영하의 날씨와 서리가 덮쳐 지역 커피나무의 30% 정도가 피해를 보게 됐다. 피해가 심한 농장은 작황이 회복되기까지 3년은 걸려 2024년에나 커피를 생산할 수 있어 피해가 막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서리 피해가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올해는 3월 날씨가 이례적으로 따뜻해 새싹이 평년보다 빨리 텄는데, 이후 갑작스레 한파가 찾아오면서 작물 피해가 커진 것이다. 최근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서리 현상일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기온 변동성이 커지고, 작물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이 말은 서리 현상일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서리에 의한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이에 농민들은 연소법, 살수법, 송풍법 등 물리적 방법을 동원하거나, 기상통계를 활용해 작물과 품종을 취사선택하는 등 서리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기상청도 서리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기상기후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날씨마루(bd.kma.go.kr)’에서 위치별로 내일과 모레의 ‘서리 예측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대구지방기상청에서는 경북의 상주·의성·안동·영천 4개 시·군 640개 농가를 대상으로 대표적인 과수 6종(사과, 감, 포도, 복숭아, 자두, 배)에 대해 ‘주의-경고-위험’ 위험등급별 서리 발생 가능성 알림서비스를 시험 제공하고 있다.

위험단계에 따라 피해 예상 과수를 조기 수확하거나, 미세살수 물탱크와 방상팬을 점검하는 등의 대응 방안도 함께 알려주고 있어 과수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리뿐 아니라 호우, 폭염, 강풍 등 8가지 기상재해에 대해서 위험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경상북도 전체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본격적으로 서비스가 시행된다면 농업 분야 기상재해로 인한 피해 감소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자연현상을 이기기는 어렵겠지만,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해 산출된 기상정보를 잘 활용한다면 올해도 가을이 주는 풍요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박광석 기상청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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