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욱 에녹 원장

국민을 ‘레밍’에 빗대 조롱한 발언으로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2017년 충북지역 최악의 수해 시기에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난 김학철 도의원(당시 자유한국당)의 발언이 그것이다. 프랑스 체류 중 물난리 속 해외연수였기에 국민 정서에 반하지 않냐는 한 언론과의 전화통화에 “세월호부터도 그렇고, 국민이 제가 봤을 때는 뭐 레밍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집단행동을 하는 설치류 있잖아요”라고 했다. 당시 이 발언은 여당과 국민의 공분을 사며 제명이라는 절차에 이른다. 이후 레밍이라는 나그네쥐들이 실제 리더만 바라보고 벼랑 아래로 무리 지어 떨어지는지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세월호 문제나 자신의 지역구의 수해 문제를 국민의 무지한 감정적 분노로만 이해한 지방의원에 대한 비난이자 국민적 공분이었음은 분명하다.

5년 여 시간이 지난 오늘,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모습은 어떠한가? 혹여, 레밍이 아니라 리더마저 존재하지 않는 개, 돼지로 국민을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수많은 언론과 빛처럼 빠른 인터넷 세상임에도 진실은 외면한 채 선동과 선전이 난무하는 정치 현실이 아닌가 싶다. 프레임 논쟁에 너무도 익숙해진 정치판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로 비난하기 일쑤다.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 나눠진 국민은 ‘깨시민’과 ‘좀비’라는 말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자신은 개념을 탑재한 이성적 유권자지만 상대방은 감정에 충실한 무지한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무지몽매한 상대방을 깨우치는 것이 자신의 타고난 사명인 것처럼 온라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감성 정치’가 반드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정치적 기술이며 오래전부터 행해온 정치행태로서 후보자에 대한 호감도와 득표를 상승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특히나 국민의 여론과 정치 경제적 위기상황이 직결될 때 그 효과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국민의 편견과 선동을 유도하는 감성 정치는 이미 ‘선동정치’로 왜곡된다. 선동과 편견이 동반된 감성은 확증편향으로 확대되고 사실로 확인된 사안마저도 ‘거짓 뉴스’로 탈바꿈돼 받아들이게 된다. 그 실례를 찾기 위해 먼 나라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2008년 대한민국 촛불시위의 시발점인 ‘광우병 사태’가 그것이다. 대법원을 통해 허위사실임이 밝혀진 이후임에도 누구 하나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반성하지 않는 우리 정치 현실의 현주소다. 국민의 연약한 감성을 이용한 사람들이 정권의 요직과 언론의 패널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레밍 논쟁’은 오히려 일회성의 해프닝처럼 느껴진다.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일이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후보들은 수많은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적 여론에 민감한 사안은 ‘재난 지원금’에 대한 대상과 지급액의 규모다. 최근 철회한 이재명 후보의 ‘전국민 지원금’과 윤석렬 후보의 선별지급 ‘영세 소상공인, 자영업자 보상’이 그것이다. 이 또한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는 ‘감성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수많은 자영업자의 폐업과 대다수 국민의 경제적 고통 속에서 재난 지원금 지급은 분명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최소 20조에서 50조에 육박하는 재원의 마련과 그로 인한 재정 건전성의 악화란 문제는 국민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고통 속에 있는 서민과 소상공인들을 이해하면서도 표를 위한 공약인 ‘포퓰리즘’으로 비난하는 이유다. 현실적인 재원 마련과 합리적인 지급 방법과 시기에 대한 공감대 없이는 대통령 당선을 위한 선심성 공약으로 볼 수밖에 없다.

보여주기식 정치를 ‘쇼통’으로 부르는 이유는 국민의 감성과의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한 리더로서의 신념이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바뀔 때 국민은 단순한 선동의 대상일 뿐이다. 감성은 눈물에 약하며 선동에 휩쓸리기 쉽다. 그것은 순수함의 이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성의 원죄적 성격을 비난하기 전에 그것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사악함을 정죄해야 한다. 오직 자신과 조직만을 위해 모습을 바꾸는 위정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만이 잘못된 길을 돌아가는 최선의 방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시욱 에녹 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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