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준규 여성메디파크병원장
▲ 여준규 여성메디파크병원장


흔히 산부인과는 임신, 출산, 유산, 자궁암, 난소암 등을 치료하는 진료과라고 생각할 것이다.

산부인과는 늘 현실 속에서 여성들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산부인과 의료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현대사회 여성들에게 산부인과는 죽기보다 가기 싫은 곳이라는 선입견이 팽배해 있다. 단순히 하의를 벗고, 부끄럽고, 민망한 곳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치과에 가서 입을 벌리는 것도 민망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겠다.

병원이란 질병의 증상으로 인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혹은 검사와 진단을 위해 가야 하는 곳이다.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일련의 과정들은 정확한 진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마치 동네 아저씨나 모르는 남성에게 치부를 드러내는 것으로 여기는 일부 여성들의 문제 인식은 분명 잘못됐다.

이는 마치 속이 쓰리고 아픈데 위장 속을 보여주지 않는 것, 대장암 의심 증상이 있음에도 항문을 보여주지 않는 것, 치과에서 구강 치료를 하면서 입을 벌리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산부인과는 현대 의학 시대에 접어들면서 임신, 출산은 물론 여성 사망률, 신생아 사망률 감소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불치병에 가까웠던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난소암 등이 조기 진단만 받으면 완치가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됐다.

◆단순 치료에서 이성과 감성을 보듬어

과거 동·서양 역사적 사료나 고전 소설 등을 살펴보면 그 속에 산부인과적 요소가 무수히 많았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왕비나 후궁이 출산하다 산모와 아기 모두 사망한 경우 난산으로 인한 태아가사, 자궁파열, 산부출혈로 인한 저혈압성 쇼크사 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왕자나 공주 출산 후 산모가 1일 이내 사망한 경우에는 자궁파열, 3~7일 이내는 임신중독증이나 산후 과다출혈로 인한 전신성 혈액응고 장애 질환이 추정된다.

고전 속의 장화, 홍련의 모친과 심청이의 모친이 아이를 낳은 지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난 것 역시 산후출혈, 임신중독증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자궁경부암으로 인한 하혈, 난소암 말기에 복통과 하혈, 복수가 차서 고통 속에 사망 등 역사적 보고서에는 산부인과 치료 부족으로 인한 사망 사례가 무수히 많다.

근대사회 이전에는 보통 5~7명 많게는 10~12명의 아이를 출산했다. 산부인과적으로 다산 시대에는 현대의 난소 양성종양과 유방 종양의 발생률은 오히려 낮았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요실금과 자궁탈출증 등의 질환은 지금보다 높았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하다.

이러한 여성 질환들은 결국 성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 과거의 일부다처제나 첩 문화가 성행했던 사회 풍조 역시 여성 질환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 근대 의학에서 산부인과 의사는 단순히 출산을 안전하도록 돕는 역할에서 벗어나 ‘히스테리증’으로 불리는 여성들의 억압된 이성과 감성적 증상까지 치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산부인과 의사가 직접 질 마사지를 통해 여성들의 억압된 정서를 해소하는 과정도 진료 행위에 포함됐다. 이른바 환자의 ‘오르가즘’을 유도해 히스테리로 인한 과민, 예민 등 정신적 불안정 혹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일련의 증상을 치료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불과 100년 전의 이야기이다.

이후 산부인과 의사에게 직접 마사지 받지 않고 본인 스스로 ‘히스테리증’을 치료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게 ‘딜도’의 시초다.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경이나 고대 역사서 등에서도 남근목이나 남근석은 무수히 언급되거나 출토됐다.

◆현대 의학 발전…산부인과가 여성 건강 수호자로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과거 출산 보조 역할에 머물렀던 산부인과는 비로소 여성 건강의 수호자로 거듭나게 된다.

퀴리 부인이 발명한 X-ray와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용으로 개발된 초음파(Sono)가 의학적으로 접목되면서 1980년대 초음파 검사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스인 미국 의사 파파 니콜라우가 발명한 PAP 진단법은 자궁경부암 초기 진단 시대를 열었다. 이 초음파 검사는 임신과 종양의 진단 부분에서 획기적 발전을 가져왔다.

2000년 이후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 기피 및 산부인과적 기본검사도 등한시하는 잘못된 사회 풍토 속에 자궁·난소의 양성 종양과 유방 종양, 암에 노출됐다. 문란한 성관계 등 개방적인 사회적 분위기 역시 자궁경부암 발생률이 높아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출산하지 않았거나 또 출산력이 적은 여성일수록 자궁과 난소 및 유방의 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

현대사회 여성들은 이러한 여성 질환을 두려워 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궁, 난소에 대해 폐경이 올 때까지 6개월마다 정기적인 검진만 한다면 여성 암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유방질환은 1년에 한 번, 만약 기저 질환이 있다면 3~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현대 의학 시대에 들어 진정한 여성 건강 지킴이로 거듭난 산부인과는 ‘저출산’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부인과’ 영역이 크게 발전하고 있다.

20~55세 사이 여성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자궁종양의 경우에도 5㎜, 10㎜ 미세 구멍을 통해 복강경으로 자궁과 난소는 보존하고, 종양만을 제거하는 기술이 등장했다.

수술과 마취가 필요 없이 극초음파를 이용해 자궁종양의 조직을 괴식사시켜 치료하는 하이푸(HIFU) 시대도 열렸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최근 15년 사이에 환자들이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여성 의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긴 점이다.

특히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지방의 경우 그 색채가 더 짙어졌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뛰어난 기술을 갖춘 명장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명장을 가리는 데 여성과 남성을 따질 이유가 없다.

여성들에게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음식·요리 영역에서도 정작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는 남성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기술 앞에 성별은 없다는 이야기다. 실력이 있고 뛰어난 수술 기술을 가진 의료진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환자들이 망설인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여성들이 유방외과나 산부인과 의사를 찾을 때 의술이 아닌 성별로써 의사를 선택해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상황이 벌어져선 안 된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