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의 별/윤경희

발행일 2021-12-09 14:53:5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북간도 하늘엔 당신이 뵈지 않습니다//셀 수도 없는 별들만 무진장 내려와//헤식은 문고리 사이로 당신을 불러봅니다//한 끼 허기보다 간절했던 조국의 품//용정 지붕 아래 고뇌의 시를 쌓고//암울한 시대의 뒤쪽 당신은 늘 아팠습니다//길 잃은 새처럼 날갯짓도 잊은 채//혼절의 계절은 소리 없이 져가고//남의 땅 어둑한 독방 바람처럼 울다가//끝끝내 하지 못한 별들의 긴 이야기//부끄러운 몸을 접어 아침을 기다렸던//주름진 미완의 청춘, 당신을 헤아려봅니다

「대구문학」(2020, 158호)

윤경희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2006년 유심신인문학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비의 시간’, ‘붉은 편지’, ‘태양의 혀’, 현대시조 100인선 ‘도시 민들레’를 펴냈다. 영언시조동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인은 ‘동주의 별’ 시작노트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영화 ‘동주’는 암울한 시대 한 장의 흑백사진이었다. 순수의 앳된 얼굴은 아픈 흐느낌으로 혈관 속까지 파고들었다. 자신의 몸이 부끄럽다며 괴로워했던 그 홀로 감당할 수 없었던 순백의 영혼. 그의 시 세계마저 짓밟힌 힘없는 나라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 송두리째 싹이 잘린 그의 언어들은 젖은 몸과 결박돼 찢겨갔지만 그의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는 산천 깊이 뿌리내린 긴 생명력의 냉이꽃처럼 우리 곁에 피어 있다. 마음껏 시를 쓰고 싶어 했던 그. 사랑했던 친구도 조국도 묵묵히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절규의 시들을 헤아려본다.

영화를 보며 느낀 감회가 남다르다. ‘동주의 별’은 네 수 한 편으로 다소 호흡이 긴 작품이다. 시인 윤동주에 대한 헌사이자 짧은 생애를 축약해서 진솔하게 노래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첫수 북간도 하늘엔 당신이 뵈지 않고, 셀 수도 없는 별들만 무진장 내려와 헤식은 문고리 사이로 당신을 불러봅니다, 라는 대목에서 보듯 용정 윤동주 생가를 찾아 울컥하는 마음을 다독이며, 몹시 아팠던 시인의 일생을 떠올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끝수 끝끝내 하지 못한 별들의 긴 이야기 부끄러운 몸을 접어 아침을 기다렸던 주름진 미완의 청춘, 당신을 헤아려봅니다, 로 깔끔하게 마무리함으로써 단순한 회상이나 추억담에 머물지 않고 깊은 서정적 울림을 안긴다. ‘동주의 별’은 암울한 시대 한 장의 흑백사진이었던 윤동주 시인을 지금 이곳으로 초대해 순수의 앳된 얼굴, 순백의 영혼과 해후하도록 했다. 시공을 초월한 가슴 뭉클한 만남이다. 그런 점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의 다른 작품 ‘화순 적벽’은 또 다른 서경과 서정을 풍미하고 있다. 그대는 아득한 벼랑, 내 한 점 바람이라면 언제든 손 내밀 수 있는 한 점 바람이라면 이렇듯 먼발치 홀로 애태우지 않았을 테지, 라고 초장과 중장에서 각운을 살리면서 묘한 되풀이를 통해 깊은 울림을 안기는 사랑의 정조를 직조한다. 언제든지 손 내밀 수 있는 한 점 바람이라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영원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발치에서 홀로 애태우는 일은 무장 아픈 일이다. 그래서 화자는 또 결코 닿을 수 없다면 결코 닿지 못한다면 차라리 내 한 줌 가을볕으로 바스러져 스미듯 네 속에 젖어 뜨겁게 네 속에 젖은 채로 천년만년 살고지고라는 열망을 둘째 수에서 진솔하게 표출하고 있다. 누구든지 화순 적벽 앞에 서면 이런 감상에 빠져들 것이다. 그만큼 화순 적벽은 마주선 이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절경이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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