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학」(2020, 158호)
윤경희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2006년 유심신인문학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비의 시간’, ‘붉은 편지’, ‘태양의 혀’, 현대시조 100인선 ‘도시 민들레’를 펴냈다. 영언시조동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인은 ‘동주의 별’ 시작노트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영화 ‘동주’는 암울한 시대 한 장의 흑백사진이었다. 순수의 앳된 얼굴은 아픈 흐느낌으로 혈관 속까지 파고들었다. 자신의 몸이 부끄럽다며 괴로워했던 그 홀로 감당할 수 없었던 순백의 영혼. 그의 시 세계마저 짓밟힌 힘없는 나라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 송두리째 싹이 잘린 그의 언어들은 젖은 몸과 결박돼 찢겨갔지만 그의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는 산천 깊이 뿌리내린 긴 생명력의 냉이꽃처럼 우리 곁에 피어 있다. 마음껏 시를 쓰고 싶어 했던 그. 사랑했던 친구도 조국도 묵묵히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절규의 시들을 헤아려본다.
그의 다른 작품 ‘화순 적벽’은 또 다른 서경과 서정을 풍미하고 있다. 그대는 아득한 벼랑, 내 한 점 바람이라면 언제든 손 내밀 수 있는 한 점 바람이라면 이렇듯 먼발치 홀로 애태우지 않았을 테지, 라고 초장과 중장에서 각운을 살리면서 묘한 되풀이를 통해 깊은 울림을 안기는 사랑의 정조를 직조한다. 언제든지 손 내밀 수 있는 한 점 바람이라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영원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발치에서 홀로 애태우는 일은 무장 아픈 일이다. 그래서 화자는 또 결코 닿을 수 없다면 결코 닿지 못한다면 차라리 내 한 줌 가을볕으로 바스러져 스미듯 네 속에 젖어 뜨겁게 네 속에 젖은 채로 천년만년 살고지고라는 열망을 둘째 수에서 진솔하게 표출하고 있다. 누구든지 화순 적벽 앞에 서면 이런 감상에 빠져들 것이다. 그만큼 화순 적벽은 마주선 이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절경이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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