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제 출신이 비천하다. 비천한 집안이라서 주변을 뒤지면 더러운 게 많이 나온다.”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제 잘못이 아니니까, 제 출신이 비천함은 저의 잘못이 아니니까, 저를 탓하지 말아 달라.” “저는 그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 이 말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한 유력한 대선 후보가 지난 4일 전북 군산 공설시장 연설에서 한 말이다.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다시 꺼낸 것은 이 말 속에 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처참한 가족사를 공개석상에서 일일이 거론한 이유는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것일 것이다. 한편으론 소시오패스로 전문의가 의심할 정도의 충격적인 스캔들들을 환경적 요인 탓으로 돌려버리고, 다른 한편으론 밑바닥부터 최정상까지 오른 성공신화를 감성적으로 포장해 뭇사람의 동정심을 자극한다는 목적일 터다. 연예인과의 성 스캔들, 형수에게 한 지저분한 쌍욕,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등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 개천에서 용 난 걸 역공의 무기로 활용하자는 노림수다. 허나 앞뒤 아귀도 맞지 않는 말이 수준 높은 국민에게 먹혀들지 의문이다. 실책과 허점이 드러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비천(卑賤)하다’는 말은 ‘신분이 낮고 천하다’는 말이나 전후 문맥으로 보아 집안이 가난해 가족 대부분이 거칠게 살았다는 의미인 듯하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가족들이 모두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일단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대한민국은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로 비천한 계급이 따로 없다. 그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여당 대선 후보까지 오른 건 대단한 성공스토리이긴 하지만 그건 거기까지다. 그런 사실로 성공 이후의 잘못을 덮을 순 없다. 비천한 집안이란 어불성설로 허물을 덮으려는 고의가 비열하다.

가난한 집안 주변을 뒤지면 더러운 게 많이 나온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다. 청빈을 자랑스럽게 여긴 성리학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선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 때만 되면 여러 후보들이 득표용으로 가난을 활용하는 것만 봐도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정치권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난 극복이 성공의 전제조건이라 믿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뒤져서 더러운 게 나오는 곳은 가난한 집안이 아니라 부유한 집안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보편적이다.

비천한 출신이 개인 잘못이 아니니까 자신을 탓하지 말라는 말도 터무니없다. 비천한 출신이라고 비난한 사람은 없다.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고 대선 후보까지 올랐다는 사실은 그를 지지하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대 강점을 도리어 비난하지 말라고 돌려 친 것은 고단수 계략이다. 그의 말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점은 그 자신도 알 것이다. 가족의 참혹한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밝혀 그의 솔직함을 과시하고 그걸로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저의가 읽힌다. 추악한 스캔들들을 열악한 환경 탓으로 돌리고 어쩔 수 없었던 일로 호도하려는 악의가 느껴진다.

집안이 가난하다고 해서 쌍욕을 하거나 엇나가라는 법은 없다. 1963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불 정도다. 이 후보가 태어난 시절, 대부분 가난했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허리띠 졸라매고 가르치고 또 배웠다. 가난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부모가 무식했지만 정직하게 살았고 형제자매들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반듯하게 자랐다. 형수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쌍욕을 하고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성공한 다음에 자행한 자기 잘못을 가난한 집안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교활하다. 가난한 집안을 비천하다고 말한 건 시대착오적 망언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얼마나 큰일을 해낼 수 있는지도 겪어봤고 또 얼마나 국민을 힘들게 하고 나라를 거들 내는지도 경험했다. 이제 또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고 자신의 일에 책임지지 않는 사람, 거짓으로 국민을 호도하는 사람, 정서불안과 콤플렉스로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려운 사람 등을 걸러내야 한다. 자기 잘못을 부모의 가난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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