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정치는 말의 예술, 가능성의 기술 또는 예술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정치와 정치인에 관한 아포리즘은 부정적인 것이 많다. 나플레옹은 “정치는 바보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정치는 너무 중차대한 것이라 정치인에게 맡길 수 없다. 정치인은 자신이 한 말을 믿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의 말을 믿으면 놀란다”라고 했다. “정치인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강도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사람들이다”라고 한 드골의 말에 이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인이란 원래 그런 속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 정치에 대한 실망과 혐오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가라앉혀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무관심하려 해도 우리는 정치를 떠나 살 수 없다. 차라리 정치로 인해 분노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정치인은 지지율을 먹고 산다. 지지율은 에너지원이다. 지지율은 살아있는 생물이라 우리처럼 감성적 성향이 강한 사회에서는 시시각각 변한다. 이런 환경에서 판을 뒤집고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감성팔이’와 ‘이미지 선거’이다. 감성팔이란 ‘감성을 자극해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을 의미한다. 현재 수십억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성장기의 가난을 과장하며 흙수저의 지지를 호소하거나, 권력의 정점을 경험한 사람이 젊은 한 때의 실패와 좌절을 들먹이며 현재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청춘들의 공감을 얻으려 하기도 한다. 새롭고 신선한 것을 좋아하는 심리를 이용해 검증된 전문가보다는 대중적 인기가 있는 인사를 무분별하게 영입해 특정 계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이미지 선거’도 문제다. 우리는 감성적 접근으로 상황을 오판한 사례를 무수히 봐 왔다.

서울대 김상환 교수는 한류는 한국인의 ‘딴따라 기질’에서 왔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춤과 노래에 한국인이 그렇게 탁월한 이유를 무속적 상상력에서 찾았다. 무속적 상상력의 특징은 감성적 충동과 즉흥성에 있다. 형식적 균형을 깨는 파격, 비대칭을 낳는 역동적 흐름이 관건이라고 했다. 무속적 역동성은 단순히 질서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어떤 무질서의 질서, 비형식의 형식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역동성은 비합리적 충동과 광신적 맹목으로 빠져들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속적 상상력이 통제 불가능한 광기로 번져가는 과정을 수없이 목격했다. 한국적 상황에서 지나친 감성팔이가 문제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속적 사유와 신명, 광기는 민중과 지식인 모두에게 자기 도피와 자기방어의 방편이 될 수도 있지만, 이제 우리는 조금 더 차분하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숫자놀음에 너무 민감하지 말아야 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숫자로 거짓말한다.”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통계에 대한 불신은 통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통계를 통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자기주장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말이다. 각종 자료나 지지율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진실을 왜곡하거나 여론을 오도하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한다. 국민은 특정인의 지지율보다는 정책과 비전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그는 “폴리스의 법은 좋은 습관을 심어주고 좋은 인격을 형성하며 시민의 미덕을 길러준다. 정치란 자칫하면 휴면 상태에 놓일 수 있는 시민의 심사숙고 능력과 실천적 지혜를 발휘하게 해 준다”라고 했다. 그는 정치의 목적은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개인의 이익 추구를 위해 공정한 규칙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생존의 차원을 넘어 완전한 인간이 되려면 정치 공동체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치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인간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여야 대권 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캠페인에 들어갔다. 유권자는 천박한 감성팔이나 우선 입에 달콤한 포퓰리즘에 혹하지 말고 무엇이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를 생각하며 후보의 말과 행동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아울러 언론은 유권자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진영 논리에 휘말리지 말고 객관적 관점에서 정보를 제공해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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