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사촌 ~

…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 봉사하는 날은 몸이 젖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하다. 장애인을 돕는 자원봉사는 힘들긴 하지만 가슴 뿌듯한 일이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물로 샤워부터 했다. 고등학생인 두 아들은 밤늦게 올 것이고 남편은 3박4일 출장을 갔다. 모처럼 긴장이 풀리고 편안하다.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틀었다. 감미로운 듯 슬픈 음률에 취했다. 순간 드르륵드르륵, 둔탁한 소리가 끼어들어 음악을 난도질했다. 화가 나서 천장을 노려보다가 음악을 껐다. 인터폰을 들고 경비원의 중재를 요청했다./ 위층 주인이 바뀌면서 정체 모를 소리에 밤낮없이 시달렸다. 아들도 남편도 계속되는 소음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일주일을 참다가 마침내 인터폰을 들었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 경비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위층에 어필했다. 주의하겠다는 경비원의 전갈을 받았지만 소음은 멈추지 않았다./ 경비원이 인터폰을 통해 애써 중재를 했으나 결과는 ‘역시나’였다. 드르륵거리는 소음이 그치지 않았다. 나는 인터폰을 들고 경비원에게 위층과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는 나비나 파리가 아니라는 둥 젊은 여자가 뻔뻔스럽게 변명해댔다. ‘배 째라’는 듯하다. 인터폰을 끊고 천장에 대고 혼자 큰소리로 욕설을 해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인터폰으로 말다툼이나 할 게 아니라 직접 부딪혀야 할 것 같았다. 화가 날수록 침착해야 한다. 쓰지 않은 실내용 슬리퍼를 선물로 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좋은 관계도 유지하고 소음도 줄이는 효과를 기대했다./ 위층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 있다가 문이 열렸다. 준비해뒀던 인사말을 건네면서 포장한 슬리퍼를 내밀려던 나는 말 한 마디 운도 떼지 못하고 우두망찰했다. 휠체어를 탄 젊은 여자가 달갑잖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소리가 덜 나는 것으로 바퀴를 갈아볼 작정이라고 하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휠체어와 빈약한 하반신을 덮은 담요를 보다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슬리퍼 든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소외된 이웃을 돕지만 위층에 누가 사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한때 반상회라는 조직이 이웃끼리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소통창구가 됐지만 이젠 그마저도 없어졌다. 이웃 간에 서로 모르고 사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 방해 받기 싫어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이런 움직임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일까.

개인주의나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공동체의 가치가 빛을 잃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가 무색하다.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사는 것이 편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은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존재다. 간섭받지 않는 상태를 편안하게 생각하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은 사람과의 사교에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함께 살다보면 어쩌다가 작은 문제로 다투기도 하지만 오순도순 더불어 살아가고픈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함께 살아가면서 동시에 프라이버시도 지키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웃 간에 서로 역지사지하고 배려하는 것이 상호 윈·윈 하는 방책이다. 이웃에 대해 무관심한 현대인의 무미건조한 삶을 치유하는 묘약은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아닐까. 품위를 갖추고 예의를 지키는 이웃이 되고 싶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