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하루 일과는 아침회진으로 시작한다. 중환자실 환아의 경우 간호사가 전적으로 돌보면서, 따로 부모와의 면담을 통해 이야기가 오가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 병동 입원 환아는 가볍고 밝게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밤새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집 떠나서 힘들지는 않는지? 애기 아빠의 식사는 누가 챙기는지? 젖병부터 아기의 장난감까지 물건이 많을 때에는 퇴원할 때 이삿짐 센터를 불러야겠다는 농담에서, 아기가 많이 크고 살이 통통하게 올랐을 때에는 입원비 외에 따로 양육비까지 받아야겠다고 이야기 하면 아이의 부모는 대게 환한 웃음으로 답한다. 그리고 그 날 이뤄질 검사와 일정에 대해 설명하고, 저녁회진 때는 그 결과에 대해 설명한다.

회진 때, 아기는 자고 부모가 깨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보호자가 너무 피곤해 잠들어 있고, 아이만 방긋방긋 웃으면서 혼자 노는 경우도 있다. 근래에는 아기를 가슴에 얹어 함께 놀거나 잠을 재우는 부모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캥거루 케어’다. 캥거루 케어는 예정일 보다 일찍 태어난 미숙아를 부모가 앞가슴에 수직 위치로 안고 일정 시간 동안 피부를 맞대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모습이 마치 주머니 안에서 아이를 키우는 호주의 캥거루 육아법과 비슷하다고 해 캥거루 케어라고 이름 붙여졌다.

1978년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처음 시도된 캥거루 케어는 미숙아들을 케어할 인큐베이터가 부족할 뿐 아니라, 인큐베이터를 가동할 전력이 불안정해 의사들이 산모들에게 미숙아를 안고 모유 수유를 하도록 한 것이 시초다. 현재는 인큐베이터의 대체재가 아닌 미숙아 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전 세계 전문가들 역시 “갓 태어난 아이와 부모가 신체적 접촉을 많이 해야 아이가 더 건강해진다”고 말하며, 캥거루 케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실제로 노르웨이 베르겐대학교 연구진은 캥거루 케어가 신생아의 사망률을 현저하게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2015~2018년 가정에서 출산한 신생아와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간 저체중 미숙아 8천400명을 대상으로 캥거루 케어의 효과를 조사한 결과, 생후 한 달 동안 하루에 적어도 12시간 이상 부모와 밀접한 신체적 접촉을 한 미숙아의 한 달간 생존율이 30% 증가하고 생후 6개월간 생존율 역시 25%가 증가했다.

이 뿐만 아니라 캥거루 케어는 미숙아와 산모 사이의 애착관계를 강하게 만들고, 신체적 접촉을 통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또 캥거루 케어를 받은 아기의 인지 기능 및 정서 발달과 관련된 좌뇌 전두엽이 활성화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아기의 입장에서는 엄마 뱃속에서 늘 익숙하게 듣던 심장 박동 소리가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장 박동 소리와 유사한 바로크 음악이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에 뛰어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나 부드러운 바람소리들도 역시 같은 역할을 해, 잠들기 힘들어 하는 아이에게 ‘백색소음’(white noise)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아이와 부모와의 상호작용은 어린 아이들이 심리적 안정을 얻을 뿐 아니라 처음 접하는 외부 세계를 긍정적으로 탐색하며 인지와 정서가 발달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게 되는데, 그 바탕에는 가족이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는 최근 한국을 포함한 17개 선진국 성인 1만9천명을 상대로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14개국에서 ‘가족과 아이들’이라고 답했다.

가족을 1순위로 꼽지 않은 나라는 3개국이다. 스페인, 대만, 한국이 해당한다.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 한국은 물질적 풍요를 1위로 꼽았다. 모든 국가에서 물질적 풍요는 상위 5개 항목에 포함됐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1위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충분한 수입, 빚이 없는 상태, 음식, 집 등이 물질적 풍요에 해당한다. 한국인들이 꼽은 순위는 물질적 풍요(19%), 건강, 가족, 지위, 사회 순이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부자되세요”,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많이 보게 되면서, “행복한 가정되시라”는 덕담도 추가하고 싶다. 가난했지만 가족의 지지 속에 개천에서 용이 나고, 따뜻한 인간관계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임인년 새해가 됐으면 한다.

김준식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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