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는 정직하다~

…어머니 제삿날 형 집에 갔다. 형수의 눈두덩에 멍이 들어있었다. 멍이 잘 드는 체질이란다. 그의 아들과 조카 내외는 또 못 온단다. 천둥 칠 일이다. 나쁜 사람만 잡아먹는 괴물이 하늘에 사는데 천둥은 그 괴물의 발자국 소리고 번갯불은 그 괴물의 눈빛이라나. 그 얘기에 겁먹어 그는 지난 잘못을 이실직고하기도 했다. 아버지 죽음이 그 믿음을 더해주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귀가하다가 벼락을 맞았다. 천벌을 받았다면서 아버지의 주폭을 닮지 말라고 어머니는 신신당부했다. 아버지는 순한 사람이었지만 술만 먹으면 딴 사람이 됐다. 아버지는 장마당을 떠도는 소장수였기에 어머니가 집안일과 농사일을 도맡았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면 어머니는 형제를 옆방으로 보낸 후 홀로 욕설과 구타를 감당했다. 어느 날 문구멍으로 충격적인 주폭 현장을 목격했다. 그런 일이 있으면 한 동안 조신하다가 결국 또 도돌이표가 됐다. 언젠가 어머니의 야반도주를 형이 막은 적도 있었다. 그날, 아버지가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자 어머니는 식칼을 옆에 놓고 기다렸다. 다행인지 괴물이 대신 처리해 버렸지만./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 했다. 청상과부가 된 후 어머니는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서 억척같이 살아왔다. 집안일과 농사일에 소장수와 일수놀이를 더하여 일인사역을 해냈다. 독한 마음을 품고 살라며 아들 형제를 세뇌시켰다. 형은 법대에 들어갔지만 그는 삼수까지 했지만 대학에 못 들어갔다. 대신 그는 학원에서 아내를 만났고 동거를 하면서 혼인신고를 했다. 돈 벌어 제과점을 내면 식을 올리기로 약속했다. 아내가 임신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임신은 약속위반이었다. 그가 술을 마신 것은 그때부터였다. 술이 술을 불렀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돌 지난 애와 가출해버렸다. 술 때문이란 걸 자백하고 그는 형과 어머니에게 백배사죄했다./ 10년이 지나 아내는 이혼서류와 함께 열 살 난 아들을 고향 집에 맡기고 갔다. 형편이 안 된다는 사연이었으나 인연을 정리하자는 의도였다. 아내가 췌장암으로 죽었다는 소문은 나중에 들었다. 어머니가 중학교까지 시키고 나서 아들을 그에게 인계했다. 착하게 커서 취직을 하고 결혼까지 했다./ 어느 날, 아들이 그의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이혼 당했단다. 그가 며느리를 만나서 재고해 보라고 간청했지만 턱도 없었다. 술, 바람, 돈 그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니었다. 며느리는 이혼사유를 끝내 밝히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널브러져 있던 중에 형의 전화가 왔다. 어머니 묘를 아버지 묘 옆으로 이장하려고 했다. 생전 어머니가 극구 싫어한 일. 그는 형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형은 형수의 전화가 왔었는지 넌지시 물었다. 순간, 형수의 멍든 눈두덩이 떠올랐다.…

유려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은밀한 가족사가 서서히 밝혀진다. 외견상 자수성가한 범생에게도 은밀한 비밀이 있을 수 있다. 반듯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품격 있는 지도층도 DNA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어렵다. 후천적 획득형질이 선천적 유전자의 힘에 눌려 꼬리를 내린다는 사실이 흥미를 자아낸다. 멍이 잘 드는 체질로 분식된 폭행이 안타깝고 한편 가증스럽다. 아들의 이혼사유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학적 개연성 여부를 떠나 주폭이 폭력과 주벽으로 분리돼 자식들에게 이어진 점이 이채롭다. 이효석의 메밀꽃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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