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충환 교육문화체육부장

새해 벽두에 어느 대선후보가 후보 단일화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시대를 한 단계 더 앞서 나가게 하는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정치인이 ‘새 시대의 맏형’을 자청하고 나섰을 때 문득 1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 하나가 스쳐갔다.

2011년 8월 대구 계산동에 현대백화점이 개점했다. 당시로서는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메머드급 백화점이었다. 거기에다 교통도 지하철 1·2호선이 환승하는 최고 상권인 반월당역을 끼고 있어 누가봐도 소위 대박이 날 만한 입지에 국내 굴지의 백화점이 문을 연 것이다.

이 무렵 인근한 대구역 롯데백화점 대구점 건물 전면에 대형 현수막이 하나 내 걸렸다. 한번 교체할 때마다 전문기술자가 동원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매출 비중이 큰 행사 때만 가끔 바꿔주는 백화점의 얼굴 같은 곳이다. 그곳에 “현대백화점 오픈을 축하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대형 현수막이 내 걸린 것이다. 당시 롯데백화점 대표를 맡고 있던 이철우 사장의 이른바 ‘맏형론’이 빚어낸 촌극이다. 맏형으로서 아우가 새로운 경쟁자로 시장에 뛰어들었으니 잘 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싶었을 게다.

당시 이 문구를 내거는데 대해 롯데백화점 직원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당장 시장점유율 추락이 불 보듯 뻔한데다 자기보다 덩치도 크고 고급스런 분위기의 백화점이 코앞에 들어섰는데 한가하게 맏형타령 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어찌 됐던 결과는 직원들이 우려했던데로다. 맏형은 참패를 거듭했고 동생은 맏형을 형으로 대접하지도 않았다. 단지 한정된 파이를 놓고 다퉈야 하는 경쟁자로 볼 뿐이었다.

누가 인정하던 아니던 업계의 맏형이고 싶어하던 롯데가 최근 지역에서 뭇매를 맞았다. 지역사회와 맺은 약속을 번번이 어긴다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수성의료지구 내에 들어설 예정인 ‘롯데수성복합몰’이 본 공사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외지업체에 맡겼다는 이유로 언론과 시민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외지업체와 계약까지 마친 상태로 대구시와 상생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대구시와 시민들은 롯데가 지역사회와 맺은 상생협약을 헌신짝 버리듯 무시했다고 격앙된 목소리를 낸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면 사실 롯데의 이런 태도는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2008년 대구시청에서는 김범일 당시 대구시장과 이철우 롯데백화점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프리미엄아울렛 입점을 위한 MOU가 체결됐다. 행사 직후 가진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 사장은 롯데몰 이시아폴리스점을 명품 프리미엄아울렛매장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당시 발언이 부메랑이 돼 롯데는 대구시의회에 집중 난타를 당하게 된다. 시의원 한 사람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롯데몰의 명품없는 구성으로 대구가 얻을 다양한 시너지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지역 내 소상공인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됐다”고 성토했고, 지역 여론도 싸늘하게 반응했다.

롯데의 당초 약속은 한강이남의 명소가 될 명품아울렛을 만들어 영남권 쇼핑객들을 대구로 불러들이겠다는 것이었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시아폴리스는 모두가 기대했던 명품아울렛과는 거리가 멀다. 영남권을 아우르는 쇼핑명소라기에는 민망한 게 현실이다.

이제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그간 롯데가 보여준 여러 사례들이 ‘롯데수성복합몰’ 건설에도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수성복합몰 하나만 놓고봐도 그간 여러 차례 말바꿈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초 2018년 완공할 것이라고 했다가 미루고 또 2020년 완공할 것이라고 공언했다가 미루길 반복했다. 여러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만 업계의 ‘맏형’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는 궤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덩치만 크다고 맏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맏형노릇을 위해서는 맏형 다운 행보를 보여야 한다.

때마침 롯데쇼핑을 이끌 새로운 대표이사도 외부에서 수혈됐고, 잇따른 조직개편으로 지지부진하던 수성의료지구 복합몰을 일관성있게 추진할 ‘수성프로젝트팀’도 꾸려졌다하니 제대로 맏형다운 처신을 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서충환 교육문화체육부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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