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닮았다~

…환절기라 감기환자가 넘쳤다. 그녀 앞에 앉으면 겁먹는 아이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맹랑한 아이도 있다. 병원놀이가 재미있겠다던 주영이가 생각났다. 낯익은 얼굴이라 기억에 남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편을 닮았다. 주영이와 인증 샷을 찍었다. 그날 이후 감기가 다 나았는지 주영이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심코 가족사진을 바라봤다. 남편 어릴 때 사진을 보고 싶었다. 거실 책장에 꽂혀있는 앨범을 펼쳤다. 석탑 앞에서 찍은 어린 시절 남편 사진을 찾아냈다. 폰에 저장된 주영이 사진을 열어봤다. 주영이는 어린 시절 남편의 도장이었다. 목이 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무심코 넘어갔던 지난 일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찬찬히 돌아봤다./ 남편은 정형외과 의사라 귀가가 늦다. 답답한 마음에 딸과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놀랍게도 거기서 주영이를 만났다. 뒷모습과 걸음걸이까지 남편을 빼닮았다. 귀가한 남편에게 그를 쏙 빼닮은 애를 봤다고 했다. 남편은 무덤덤한 척 했지만 마음의 동요가 느껴졌다./ 정자은행에 자신의 정자를 판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경제사범으로 감옥에 가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등록금도 못 낼 형편이었다. 그때 의대생의 정자를 사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경제적인 절박함과 양심의 소리가 갈등했다. 결국 경제적인 절박함에 굴복했다. 그녀에게 그 일을 고백하려고 했으나 확신이 서지 않아 차일피일했다. 옛일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그 후 거리의 애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를 닮은 주영이가 딸 아영이와 이름까지 비슷하다며 아내는 신기해했다. 그의 아이가 어디선가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어수선했다. 그는 주영이란 애를 만나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 한 그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의 병원에 교통사고 응급환자가 왔다. 그 가해자로 따라온 남자가 형의 친구였다. 형 친구는 실업계 고교를 나와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다행히 환자는 안정을 찾아갔다. 형 친구가 저녁을 사겠다는 했지만 오해받을 소지가 있어 거절했다. 어떤 아이가 그의 아들이라며 찾아오는 상상을 했다. 불안하고 초조하여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는 술집 앞에 차를 세웠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곧장 교회로 갔다. 맨 뒤쪽 의자에 앉아 정신없이 기도를 했다./ 교통사고 환자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어느 날, 보호자와 원만하게 합의를 했다며 형 친구가 부부동반 만찬을 제안했다. 형 친구 부부는 만찬 장소에 아들과 함께 나왔다. 세상이 좁다. 그 애가 아내가 말하던 주영이란다. 결혼 9년 만에 얻은 늦둥이. 그 애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그와 같은 점이 보였다.…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학창시절 정자은행에 정자를 팔았던 것이 원죄다. 학업도 중단해야할 절박한 상황에서 남아도는 정자를 판 것이 무슨 죄가 될까. 양심에 거리끼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실정법상 생명윤리법 위반으로 범죄행위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생명의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윤리적 기본마저 파괴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신호탄 정도로 여겨진다. 여기서 무너지면 생명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단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생명 윤리는 아무리 보수적으로 다루어도 지나치지 않다. 똑똑한 유전자만 살아남는 시대가 온다면 나부터 사라지지 않을까.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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