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을 위한 변명~

…p의 노트북에 소설들이 들어있었고 그중 하나를 손봐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당선 통보를 받은 후 어떤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 p의 친구란다. 세상에 없는 p를 위해서 축하주를 마셔야 한다나. 노트북을 들고 나오라는 요청에 남친이 산 것이라고 하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p의 친구는 섬세해 보였다. 글 도둑질은 치사한 짓이라는 말에 고아가 된 작품을 입양한 것이며 이름을 빌려주고 세상에 알렸으니 좋은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시크한 표정을 지었다. 술이 술술 넘어갔다. 그는 p의 화신인양 나의 향후 행보를 물었다. 그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었다. 당당한 척 할수록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한참동안 말을 섞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상금으로 유럽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하자 ‘우리 둘이’ 함께 가자며 웃었다./ 내가 임용고시에 네 번 낙방한 다음 날, 남친이 고물상에서 책 무더기와 노트북을 가져왔다. 남친은 소설가로 등단하면 취직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며 소설쓰기를 권했다. 책 주인은 우울증으로 자살했단다. 책들은 대부분 고전이었다. 책이 너무 많다는 핑계로 따로 방을 얻었다. 노트북엔 장편소설 2편, 단편소설 50여 편이 들어있었다. 남친이 p의 이름을 지우고 내 이름을 써넣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상금으로 배낭여행을 가자고 했다. 남친은 학창시절 나의 문학 활동을 거론하면서 소설입문을 재촉했다. 세계시장을 다니며 인테리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신문 기자로 활동할 무렵 소설을 써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고심 끝에 나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최근 습작소설을 찾아 손을 봤다. 무겁고 진지한 캐릭터를 해학적으로 바꾸었다. 마감시간 2시간쯤 전에 원고를 접수시켰다./ 그는 열등감에 휩싸여 p가 자살하려는 낌새를 눈치 채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술이 떨어졌지만 ‘한 사람 당 한 병’이 영업신조인 욕쟁이 할매를 극복하지 못하고 등 떠밀려 막창 집에서 쫓겨났다. 그가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우린 뜨거운 키스를 나눴다./ 남친 전화가 왔다. 여행일정과 비행기 표 예약을 연기했다. 미련이 생기기 전에 노트북을 박스에 담아 그의 사무실로 보냈다. 그렇지만 남의 글을 훔친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가 노트북을 들고 찾아왔다. 노트북을 내게 돌려줬다. 버림받은 소설이 주인을 찾았다나. 그의 차를 타고 바다로 갔다. 그와 손잡고 바닷가를 걸었다.…

작가는 표절에 관한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남의 글을 토대로 첨삭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도둑질이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은 함무라비법전, 고조선의 팔조법금에서부터 십계명에 이르기 까지 범죄였다. 영혼을 훔치는 표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표절은 그 대상이 도처에 널려있어 시도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그 행위가 은밀하고 교묘하여 식별하기 어렵다. 그럴수록 표절은 더욱 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표절보다 더 악질은 아예 대필하는 것이다. 대필은 남을 속이려는 의도로 돈으로 영혼을 사고파는 것이다. 이는 문화를 위한다고 하면서 문화를 좀먹는 행위다. 표절과 대필은 양심을 더럽히는 추악한 행위다. 신춘문예와 백일장에 당선되고도 문학 활동을 접은 경우가 없지 않다. 더 넓은 길로 간 것인지, 그냥 힘들어 포기한 것인지. 왠지 그 구차한 사연이라도 듣고 싶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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