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택환의 교육 산책〉스스로 돌보는 돌봄교육

발행일 2022-03-29 10:23:3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권택환 한국교총수석부회장·대구교육대학교 교수



학교에는 돌봄교실이 있다. 방과 후에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간식도 주고 과제학습도 도와주고 다양한 예체능 교육을 위한 학습도 이루어진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사회 곳곳에서 친절하고 섬세한 돌봄의 현장을 많이 볼 수 있다. 공동우산을 준비해서 비가 올 때 사용하면 되고 화장실 청소도 학생들의 몫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습 준비물도 학교에서 제공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입는 것, 먹는 것, 잠자는 것에 대해 불편 없이 잘 돌봐주고 있다.

교육현장에서는 아이들을 잘 돌봐야 한다. 하지만 돌봐주기만 하면 좋은 교육일까? 진정한 돌봄교육은 무엇일까?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안전하게 돌보아주는 것이 돌봄교육의 끝일까? 돌봄을 받은 학생이 누군가를 돌봐주는 기회를 갖는 것까지가 진정한 의미의 돌봄교육이지 않을까?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또 다른 의미의 ‘돌봄교육’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1인 1화분 기르기로 씨앗을 심는다. 자신들이 뿌린 씨앗이 싹이 트고 잎이 나고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아침마다 자신이 돌보는 식물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 식물과 함께 학생들의 몸과 마음도 자랄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신발 정리는 내 몫이다. 가지런히 정리된 가족의 신발을 보며 기뻐한다. 식물이나 동물처럼 생명이 있는 것을 돌보는 일만 아니라 내가 가진 물건을 잘 돌보는 것도 소중한 돌봄의 경험이다. 초등학교 교실에는 버려 놓고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학용품이 많다.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잘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전자기기의 바른 사용법을 알고 잘 관리하고 사소한 학용품도 소중히 여기며 아껴 쓰고 정리정돈 하는 것은 중요한 배움이다.

예전에는 가정에서도 돌볼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형제자매가 많은 경우에는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어린 동생들을 돌보면서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났다. 요즘은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돌볼 수 있는 경험을 주지 않으면 학생들이 돌봄의 기회를 가지기 어렵다. 6학년과 1학년의 협력학습을 통해 저학년 동생들을 돌봐줄 기회를 갖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도서관에서 저학년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6학년과 함께 학교를 안내하는 수업을 진행해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를, 어떤 것을 돌봐주는 것은 학생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며 가치가 있다.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을 억지로 도시로 모시는 경우가 있다. 자식을 위해 푸성귀를 가꾸고 힘들게 가꾼 먹거리를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는 기쁨으로 사시다가 자식의 돌봄을 받기만 하면 과연 행복할까? 참된 효도는 부모님이 무언가 돌볼 기회를 드리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돌봄을 받을 때보다 돌봐줄 때 더 행복하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돌봄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누군가를 돌봄으로써 참된 기쁨을 느낀다. 누군가를 돌봐줄 때 참된 어른이 된다. 학생들의 성숙을 위해 돌봄의 대상만이 아닌 돌봄의 주체가 되는 진정한 의미의 돌봄교육이 필요하다.

작은 식물을 돌보고, 내가 가진 물건을 잘 돌보면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잘 돌보려면 가정과 학교에서 돌봄을 실천할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주어야 한다. 교육의 궁극적인 의의는 스스로를 잘 돌보는 자립하는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권택환 한국교총수석부회장·대구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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