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에 벙어리 두 명이 있었는데, 늘 붙어 다녔다. 이른 아침이면 같이 사는 집에서 나와, 팔짱을 끼고 직장까지 걸어갔다. 두 친구는 사뭇 달랐다. 늘 앞장서는 사람은 살찌고 꿈꾸는 듯한 그리스인이었다. 여름이면 노란색이나 초록색 폴로셔츠를 앞자락은 바지 속에 넣고 뒤는 엉덩이 위로 내놓고 다녔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헐렁한 회색 스웨터를 걸쳤다. 둥근 얼굴은 기름기가 흘렀고, 눈꺼풀은 반쯤 감기고, 굴곡진 입술에는 멍청한 미소가 흘렀다. 다른 벙어리는 키가 컸다. 눈매는 날렵하고 지성미를 풍겼다 늘 단정하고 말끔한 차림이었다./(…)/집에 도착하면 싱어는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손을 잽싸게 놀려 수화로 말했다. 얼굴은 진지했고, 잿빛 도는 초록 눈은 반짝거렸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2005, 문학세계사) 중에서

이 소설은 남부의 한 카페에 들르는 외로운 사람들이, 청각장애인이자 언어장애인인 존 싱어를 통해 영혼의 위로와 평안을 얻으려 하는 이야기이다. 위의 두 사람 중 날렵하고 지성미를 풍기는 인물이 바로 존 싱어이다. 장애를 가졌지만 평온했던 싱어의 삶은, 그의 그리스인 친구 안토나포올로스가 주립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산산조각이 난다.

싱어는 친구와 살았던 공간을 더는 견딜 수 없어,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초라한 집의 방을 세낸다. 이 집은 하숙생들과 어린 동생들 뒷바라지에 지쳐 음악 외에는 만사가 시들한 소녀 믹 켈리의 집이다. 소녀는 밤마다 남의 집 정원에 숨어들어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음악을 엿듣는 게 유일한 낙이다. 사회주의를 꿈꾸는 과격한 진보주의자이자 술주정뱅이인 제이크 블라운트, 흑인이 존중받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흑인 의사 닥터 코펄랜드 등, 사람들은 비프가 운영하는 ‘뉴욕 카페’나 싱어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곤 한다. 이들에게 싱어는 유일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였다. 그러던 7월의 어느 날, 싱어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떠나버려서 이들은 놀라고 마음이 상한다. 그가 떠난 이유를 누구도 몰랐지만, 사실 싱어는 여름휴가를 그리스인 친구가 머무는 정신병원 부근에서 보내기 위해 떠난 거였다. 카페의 손님들이 싱어를 필요로 하듯이, 싱어 역시 자신의 말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소설은 정신병원에 도착한 싱어가 친구가 죽었다는 말에 절망 속에서 자살하고 마는 장면에서 파국을 맞는다. 싱어를 비롯한 소설의 인물들 모두는 섬처럼 고독하다. 소설은 싱어가 단지 하나의 환상에 불과했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암시로 가득하다. 하지만 소설은 가족을 위해 잡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된 믹 켈리가 피아노를 사려고 돈을 모을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작가는 어두운 일상 속에 빛나는 불씨와도 같은 작은 희망을 남기고 싶었던 걸까? 소설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좋았어! 됐어! 좋아질 거야”라고 말이다.

신상조(문학평론가)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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