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욱 에녹 원장

스포츠 경기에서 ‘언성 히어로(unsung hero)’란 말을 자주 듣는다. 흔히 영웅을 의미하는 ‘hero’란 단어에 ‘불려지지 않는’ 혹은 ‘찬양되지 않는’의 뜻을 가진 ‘unsung’이 결합된 용어다. 자기희생적 행위를 통해 훌륭한 업적을 이루고도 유명세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조직력을 중시하는 단체 스포츠에서 언성 히어로의 역할은 승패를 결정한다. 결과에 대한 찬사나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사람의 몫이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언성 히어로는 늘 존재해왔다. 단지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고 스스로 주목받길 원하지 않았을 뿐이다. ‘영웅만을 원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단지 조력자일 뿐이었고 사라진 인물이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영웅을 원하고 있다. 수많은 사회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비범한 능력의 영웅을 요구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 속에서도 ‘영웅적’ 대통령이 탄생하길 바라고 있으며 1인 통치의 절대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에서 이미 우리 사회는 신격화된 지도자를 용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워 ‘소통과 화합’으로 대중을 이끌어 갈 ‘절대적, 초월적 이성’을 갖춘 인물을 원하고 있다. 중세 이후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던 절대 군주의 위험성과 폐단을 역사적으로 학습해 왔음에도 21세기 우리 사회는 ‘오직’ 한사람만이 어려운 정치 사회 환경을 타파할 것이라 믿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들의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취임 한 달여 만에 부정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기 시작하더니 현재 그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과거 대통령들의 임기 초반과 비교해봐도 이례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취임 직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의 최우선 가치로 공정(31.3%), 소통(18.2%)과 화합(15.6%)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정평가가 앞서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발언 논란,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의 갈등, 부인 김건희 여사의 광폭 행보 등 부정적 평가의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정치 참여를 선언했던 윤 대통령이 기치로 내걸었던 ‘공정과 상식’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원인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공정과 상식’은 윤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 돼야 함에도 전임 정부와 다르지 않은 행보는 국민에게 좌절감을 넘어 불신을 주고 있다. 국민 정서와 괴리된 인물들의 정부 요직 임명과 비선 조직의 부활이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김건희 여사의 수행 인물들에 대한 비판이 그러하다. 대선 전 ‘조용한’ 내조를 천명함으로써 여러 법적 문제를 타개하고자 했던 의도와 다른 김 여사의 행보 또한 그 원인이다. 인사문제와 관련해 “전 정권서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냐”는 ‘내로남불’의 태도 역시 ‘공정과 상식’에서 벗어난 모습의 반복이다. 더불어 소통 부재의 오만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다.

정치 초년생으로서의 윤 대통령의 행보는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오히려 논공행상식 요직 배분의 폐단을 끊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치이기도 했다. 조국 사태와 독선적 장관 임명으로 반복된 전임 정부의 ‘내로남불’을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이라 여겼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당원들의 윤석렬 정부의 성공을 위한 다짐은 신임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에겐 희망이자 미래였다.

5년의 임기 중 두 달이란 기간은 짧은 기간임은 분명하다. 영웅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언성 히어로가 진정 필요한 시점이다. 초인적 영웅은 국민의 상상 속 기대치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 공정과 상식 그리고 소통의 진정성을 갖춘 ‘국민의 한 사람’인 대통령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김시욱 에녹 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