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이준석 대표를 앞세워 재미를 본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자 즉시 이준석 대표를 팽시키려 칼을 뽑았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이준석 대표가 ‘성접대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해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당원권 정지 6개월’이란 중징계를 내렸다. 윤리위는 “성접대 의혹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면서 당대표 정무실장이 성접대를 주장한 사람을 만나 ‘성접대 사실이 없다’는 확인서를 받고 7억 원 투자 유치 증서를 써준 사안에 대해서만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대표 정무실장이 당대표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처리했다고 믿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윤리위 징계로 당대표가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윤핵관은 바로 당권을 접수한 후 차기 총선에 자기 계파를 심을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당내 서열 2위 원내대표가 한시라도 지체하면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권한대행을 맡겠다고 나선 밉살스러운 정황이 그러하다. 여소야대로 인해 입법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단지 대선에서 승리한 사실만으로 국민의힘이 정권을 온전히 쟁취했다고 보기 힘들다. 설상가상 여론 추이를 보면 2년 후 총선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퍼펙트 스톰이라 할 만한 복합 경제위기, 국정수행 지지율 30%대 추락이란 엄중한 상황에 직면하고도 정략적 목표만 보고 당내 정적을 치는 저돌적인 ‘돌격 앞으로’가 감격스러울 뿐이다.

이준석 대표가 호락호락 당할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징계 처분을 보류하겠다는 것은 이해관계 충돌로 소송법상 ‘회피’의 범주이긴 하지만, 이의신청으로 시간을 벌면서 바로 법원에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낼 수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증거에 근거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수사 중인 사건을 사법적 판단 이전에 유죄로 추정한 징계로 회복 불가한 피해가 예측되기 때문에 가처분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 쟁쟁한 율사들이 즐비한 당에서 이 정도 상황 전개를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당내 혼란과 국민의 비난을 감수하고 권력투쟁을 선택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윤핵관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위의 실체적 판단에도 허점이 발견된다. 성상납 사건이란 실체는 판단하지 않고 거기서 종속된 사안만 판단한 점은 자가당착이다. 주된 사건의 범죄 여부는 수사 중이니 판단에서 제외한다고 해놓고 정작 주된 사건을 유죄로 추정한 뒤 거기에서 파생한 종된 사안을 유죄라고 판단해 징계를 결정한 점은 전혀 논리가 닿지 않는다. 총기 넘치는 이 대표가 이 점을 간과할 리 없다. 여당의 내홍이 장기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대표의 임기까지 그냥 가는 것이 훨씬 나았을 수 있다.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을까. 차기 잠룡들까지 헤게모니 쟁탈전에 올라타면 자칫 전통적 지지자마저 국민의힘에게 등을 돌리기 십상이다.

청년을 내세울 땐 그에 대한 리스크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한다. 청년은 도전적이고 패기 넘치며 혁신적이기는 하지만 실험적이고 좌충우돌하며 불안하기도 한 점이 특징이다. 꼰대라고 불리는 기성세대도 청년 시절엔 마찬가지였다. 정치권이 청년을 득표용으로 끌어들였다면 그 대가를 치를 태세가 돼 있어야 마땅하다. 여당의 이준석 대표나 야당의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특별한 말썽꾼이라 귀찮아한다면 옹졸한 개구리일 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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