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미국의 ‘팬톤(Pantone)’이라는 색채연구소는 매년 연말이면 이듬해 트렌드를 이끌 색상을 발표한다. 이때 발표한 색상은 패션이나 화장품뿐만 아니라 색이 들어가는 소비재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2021년에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전반적으로 침체된 사회분위기를 반영해 회색 계열의 ‘얼티밋 그레이’를 선정한 바 있다.

그럼 2022년 올해 유행을 선도할 색상은 뭐였을까? 바로 베리 페리(VERY PERI)이다. ‘베리 페리(peri)’는 신화에 나오는 ‘아주 아름다운 요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비하게 진한 보랏빛을 뜻한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올해의 컬러인 베리 페리를 윈도우, 파워포인트 등에 적용해서 출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라색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섬이 있다. 전남 신안군의 퍼플섬이다. 퍼플섬은 마을 전체, 섬 전체를 캔버스 삼아 보라색으로 도배를 하는 컬러 마케팅을 펼쳤다. 보라색 계열의 꽃을 심고, 반월도와 박지도 두 개의 섬을 연결하는 목조 다리도 보라색으로 칠했다. 5천 원 유료인 섬 입장료도 보라색 옷을 입고 오면 무료입장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한국 관광의 별’에서 본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제1회 유엔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사업에서 최우수 관광마을에 선정되기도 했다. 마치 에게해(海)의 산토리니 섬이 절벽을 따라 늘어선 하얀 건물들과 파란색 지붕으로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 할까.

보라색의 활용은 이 뿐만이 아니다. 보랏빛 소도 있다. 얼룩소도 아니고 황소도 아니고, 누렁소도 아닌 보랏빛 소라니…. 갑자기 뭔 말인가 싶기도 하다. 보랏빛 소는 마케팅 전문가로 알려진 세스 고딘이 쓴 ‘보랏빛 소(purple cow)가 온다’는 책에서 나온 마케팅 이론이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주목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렁소들 사이에 있는 보랏빛 소는 시선을 확 끌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즉, 보랏빛 소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고, 예외적이고, 새롭고, 흥미진진한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 제품보다 보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지금 보랏빛 소를 기다리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이다. 올 상반기 무역수지 적자 역시 외환위기 이후 최대이다. 반면 외환보유액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국민들은 외환위기라는 트라우마에 몸서리치고 있다. 코로나19도 재확산세에 있어 이중삼중의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보랏빛 소처럼 눈에 확 띄는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해결이 쉽지 않다는 건 국민들도 다 알고 있다. 다만, 국민들이 보기에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조차 부족해 보인다는 게 문제다.

정부는 조용하다. 위기 상황임에도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집권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보랏빛 소를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치마저도 실종이다. 국민들은 보랏빛 소를 기다리는데 국회에선 힘자랑을 해대는 소싸움장의 황소들만 보일 뿐이다. 지금 국민들은 경제에서도, 정치에서도 보랏빛 소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재 보랏빛 소라고 할 만한 어떤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누렁소들 천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 세계는 지금 불확실성과 혼란의 시대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우리나라도 올해 물가 위기에서 내년엔 경기 둔화로 고용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위기 속에서 그들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을 비롯한 장차관들 뿐 아니라 여야 국회의원들 말이다. 당신은 국민들에게 보랏빛 소인가? 아니면 울타리 쳐진 들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누렁소인가?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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