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섭 농협아그로 대표이사



실론티를 즐겨 마셔서 집 냉장고 한구석에는 실론티가 늘 자리 잡고 있다. 요즘같이 삼복더위가 절정인 날에는 시원한 실론티 한잔이 목마름을 해소 해줄 뿐만 아니라 숙취가 있는 날은 한 캔을 단숨에 들이킬 정도로 참 좋아한다.

실론티는 스리랑카산 홍차잎에 레몬과즙을 첨가한 우리나라 대표 음료중 하나이다. 이 오묘한 맛의 조합 덕분에 1993년 출시 이후 꾸준히 판매 되고 있는 장수음료이다.

‘실론’은 섬나라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다. 스리랑카는 우리말로 ‘위대한 섬’이란 뜻이며, 세계 3~4위의 차 수출국이다. 실론티 수출덕분에 스리랑카는 20세기 한때는 일본, 필리핀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부유한 나라였다.

사방이 인도양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인 스리랑카는 고온다습한 열대 몬순 기후로 야생동물들의 서식지가 많아 스리랑카 전역에는 여러 국립공원들이 지정돼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도 유명하다. 그 덕택에 헐리우드의 거장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인디아나 존스’ 두 번째 작품인 ‘미궁의 사원’은 스리랑카에서 촬영, 제작됐을 정도이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아름다운 이 나라는 20년간 권력을 독점해 온 무능한 집권세력 탓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조 요청할 골든타임을 놓쳐버리면서 지난 5월18일 국가 부도를 맞았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관광산업 수익이 94% 감소하고, 해외 노동자 수익이 24% 급감함과 더불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품과 연료값이 상승하자 해외 지불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스리랑카의 국가 부도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미국 CIA국장은 스리랑카 국가부도의 주요 원인으로 중국 자본이 판 ‘부채함정’을 지목했다. 막대한 채무를 지도록 하는 중국의 투자 방식에 스리랑카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 지역에 항구와 공항을 건설했지만 11억 달러를 들인 항구에 한 해 접안한 화물선은 34척에 불과했고, 공항은 미국 포브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텅 빈 공항’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독 스리랑카만이 곤경을 겪는 또 다른 이유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성급한 유기 농업 추진과 관계있다고 설명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대통령의 과격한 녹색원리주의가 주범이라고 했다. 2019년 당선된 라자팍사대통령은 “살충제 등 농약은 건강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10년 안에 스리랑카 농업을 유기농업으로 바꾸겠다”고 공약하면서 나라 전체를 녹색운동 실험무대로 만들었다. 실제 지난해 4월 화학비료, 제초제, 살충제 등 모든 농약 수입을 금지 시키면서 ‘100% 유기농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실론티로 유명한 차와 쌀,옥수수 등 농산물을 수출하던 나라가 갑자기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전면 중단한 결과는 쌀 수확량이 30%, 차 생산량은 18% 각각 감소했다. 주요 농산물 값이 20% 이상 치솟으며 농민과 소비자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최근 급격한 물가인상과 금리상승, 환율상승으로 가계, 기업, 국가의 채무부담 증가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시 재정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7살 때 고리대금업자가 고리채 신고를 했다고 엄마 머리채를 잡고 고향 길거리를 끌고 다니며 구타했다. 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때 알았다”고 소설미디어에 올렸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빚을 극도로 싫어한다. 청년들에게 “돈이 생기면 카드 빚부터 갚으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스리랑카는 과도한 채무와 준비 되지 않은 성급한 농업 정책으로 국가 부도에 내몰리면서 생필품 구입을 위한 스리랑카 국민들의 기나긴 줄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외환위기를 경험해봐서 인지 남 일 같지 않다.

손동섭 농협아그로 대표이사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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