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지난달 하순, 몇몇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먼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3개 지방자치단체장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뉴스였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동연 경기도지사, 유정복 인천시장이 경기 김포 마리나 선착장에서 맥주 모임을 가진 것. 3개 지자체장들은 맥주잔을 기울이며 광역교통 문제와 수도권 매립지 문제 등 수도권 3개 시·도 공동 현안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또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예비경선을 앞두고는 97그룹(70년대생·90년대 학번) 주자들을 중심으로 ‘맥주회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정가에서는 이처럼 얽히고설킨 현안을 풀어내거나 정치적 고비를 벗어나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맥주회동을 해왔다. 올해 대통령 선거 직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 야권 단일화 협상 때는 캔맥주로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2019년 5월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맥주 회동을 했다. ‘패스트 트랙’ 안건 처리로 여야간 극한의 대치를 이어오던 상황이었다. 정국이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에서 3당 원내대표가 맥주를 마시며 국회를 정상화시키는 해법을 논의해보자는 의도였다.

그럼 왜 막걸리도 있고 소주도 있는데 유독 맥주회동이 잦은 것일까. 모두 서민의 술이라는 공통점도 있는데 말이다. 이는 정치인들의 공개적인 장소에서 마시는 맥주회동이 그만큼 정치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해외로 눈길을 돌려봐도 맥주가 정치적 수단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맥주를 정치적으로 잘 이용했던 정치인은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었다. 백악관에서도 맥주를 직접 만들어 마실 정도였던 그는 아이리쉬펍에서 아일랜드 기네스 맥주를 마시며 아이리쉬계 미국인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역사를 훑어봐도 마찬가지다. 아돌프 히틀러가 정치계에 입문한 장소도 비어홀인 맥주집이었다. 맥주집인 독일의 비어홀(beer hall)은 영국의 펍(pub)이나 미국의 태번(tavern)처럼 그 지역공동체의 모임 장소였다. 히틀러는 3천명 이상 모여드는 대형 맥주집을 차례로 방문해 행사와 집회를 개최했고 국가사회주의노동당(일명 나치당)을 창당한 곳도 이곳이었다.

눈길을 지금 한국으로 돌려보자. 모든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휴가기간 중 서울 외 휴양지 방문 일정을 취소할 정도로 비상상황이다. 7월 국내 무역수지가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와중에 한국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후폭풍에 코로나19 재확산이 더해지면서 심각한 위기다. 하지만 경제는 퍼펙트 스톰이 눈앞인데 정치는 셧다운이다. 53일 동안이나 문을 열지 못하고 ‘개점 휴업’ 상태였던 국회는 어렵게 원 구성을 마쳤지만 상임위원회에서 여야의 대치가 극심하다.

위기 상황 속에서 대통령을 비롯 여야정치인들에게 맥주 한 잔 하시라고 권한다. 물론 끼리끼리 모이라는 말은 아니다. 벌게진 얼굴로 즉흥적인 화기애애함을 보여 달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술자리이지만 합리적인 대화나 창의적인 토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죽하면 맥주 한 잔 하시라고 권하겠나 헤아려달라는 말이다. 정치적 현안, 어려운 경제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맥주를 마신다는데 힐난할 사람은 없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다.

지난 7월 초,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사임하자 스코틀랜드의 맥주회사 브루독이 ‘보리스의 거짓말(Boris Lie-PA)’이라는 맥주를 출시했다. 존슨 전 총리는 부적절한 인사 강행과 이 과정에서의 거짓말 논란으로 내각 줄사퇴가 이어지자 사임을 발표한 바 있다. 오죽하면 이런 맥주까지 나올까. 한국에서 ‘○○○의 무책임’이라는 맥주가 출시될까 두렵다.

박운석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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