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우리 경제에 대한 위기 경고음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모두가 위기라고 할 때는 이미 위기의 절반 정도는 지나가고 있을 때라는 말조차 믿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얼마 전에 내년도 경제전망 작업을 마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본격적인 위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의 상흔이 너무 크고 깊어서 그 정도의 위기가 아니면 체감하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기도 했지만 그 이유 때문 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각종 대외 리스크가 우리 경제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미국 연준(Fed)의 공격적인 통화긴축으로 국내 외환 및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 장기화, 국제상품 가격 고등, 세계적 경기 둔화 등의 영향으로 무역수지가 적자가 누적되면서 실물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고, 경상 거래 등 대외 거래 수지가 악화되면서 대외 건전성 훼손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당연히 우리 경제가 점차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해도 분명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아직 본격적인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경제성장률 전망치만을 가지고 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실제로 우리 경제는 올 해 2%대 중반에서 내년도 2%대 초반대로 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금처럼 대외 리스크가 크고 날로 시장의 위기의식이 높아져가는 와중에도 이 정도 실적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은 오히려 낙관적인 것일 수도 있다. 즉 현재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우리가 경험할 수도 있는 진짜 위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진짜 위기는 가계와 기업 등 국내 경제 주체들이 위기 체감도가 지금보다 더 높아질 때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인플레(물가 상승)와 경기 향방에 대한 판단 오류로 통화정책 조정에 실패했을 때를 들 수 있겠다. 이 경우 물가 안정은커녕 경기마저 급랭시킬 가능성이 크며, 자칫 부동산 시장과 같은 자산시장이 급속히 조정되면서 가계부채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경기 둔화와 금리 상승 등에 따르는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와 자산가격 하락에 따르는 역자산효과(negative wealth effect)로 인한 소비와 투자의 감소라는 악순환고리의 형성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재정정책 역시 위기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재정정책이 통화정책과 함께 거시경제 안정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인 만큼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유혹은 매우 강하다. 하지만 거듭된 위기로 인해 재정기반이 매우 취약해져 있다는 점과 향후에도 개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경제 체력을 위협할 정도로 지출을 확대해 가는 것은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더군다나 지금은 인플레를 가속할 수 있는 리스크가 잠재된 상황이기도 해 총수요 자극책이 오히려 독이 되는 시기다.

이처럼 지금은 경제전망이 보여주는 수치보다는 환경 변화에 더 민감히 반응해야 할 때다. 물론 우리 경제가 당장이라도 큰 일이 날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좀 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단 현재로서는 우리 경제가 위기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고, 일각에서 제기하듯이 때에 따라서는 고통 분담의 각오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 및 공공부문에서까지 나서서 필요 이상으로 위기감을 고조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금은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는 위기 징후들을 불식시킬 수 있는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의사결정과 실천이 필요한 때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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