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을 키우는 솔개

김시욱

에녹 원장

매년 이맘때면 가뭄과 건조 그리고, 황사 주의보가 전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듯하다. 비가 온 후 볼썽사나운 흙먼지가 차 위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층 걱정이 앞서는 것은 산불이 아닐까 싶다. 이미 22~23일 강원도 고성과 삼척에서 산불이 보도됐다. 2019년 4월 고성, 속초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의 참사를 잊을 수 없기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의 한 부분에는 늘 안타까움이 남아있다. 당시 산불로 인해 2명 사망, 11명이 부상하고 4천여 명이 대피했으며 약 1천800헥타르의 산림과 916곳의 주택과 시설물이 전소됐다. 피해 규모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재난사태 선포로까지 이어진 역사상 기록적인 산불이었다. 하지만 국민적 대참사였음에도 당시 정치권은 원인 규명과 이재민을 위한 위로보다 선거법, 공수처법 패스트트랙으로 서로를 향한 비난이 앞섰다. 총선을 앞둔 시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호주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솔개의 ‘얕은’ 지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제우스에 의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무한의 형벌을 받는다. 어쩌면 불은 신의 영역으로 다가가는 혁신적 수단이었을지 모른다. 인류학적으로 호모 에렉투스의 불의 이용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로 인해 불을 도구로 이용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라는 등식이 성립해 왔으며 상식으로 믿어왔다.

하지만 최근 과학 전문매체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통해 솔개류의 맹금들이 먹이 사냥을 위해 불을 지르는 사례가 보도됐다. 그 구체적 논문은 호주 조류학자인 밥 고스포드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의 지리학자 마크 본타 교수팀의 연구 결과라 할 수 있다. 2011년~2017년까지의 7년간, 20여 건의 맹금류의 ‘의도적’ 화재확산을 목격한 사례를 연구한 논문이다. 밥 고스포드에 따르면 “산불이 난 곳 주변에는 어김없이 새들, 주로 솔개와 갈색 매가 몰려들었는데, 이들은 손가락보다 조금 큰 불붙은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날아가 다른 곳에 불을 내려고 시도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불의 이용과 통제의 지혜는 분명 자연과 환경을 지배하는 힘으로 작용해왔다. 불을 이용한 무기의 발전은 맹수들을 제압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다. 무리를 지어 부족을 형성하고 국가로 발전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발전의 순기능 못지않게 파괴와 정복에 따른 역기능도 따라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자연의 지배를 뛰어넘는 파괴의 과정은 열대 우림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다. 가축을 위한 목초지 개발과 ‘두리안’ 등의 열대과일 농장을 위해 무분별한 벌채와 방화가 바로 그것이다. ‘더 잘 먹고 더 편한 삶’이라는 명목 아래 산소의 30%를 공급하는 열대 우림을 파괴해 생존의 위협을 자초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내전과 국지적 전쟁 또한 역기능이 아닐 수 없다. 자위적 방어를 넘어선 진영 사이의 적대감은 파괴를 동반한 회복 불능의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먹이 사냥을 위해 의도적으로 불을 옮기는 호주 지역의 솔개가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의도적 화재확산이 오히려 자신들의 생존 서식지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행하고 있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아둔한 ‘자기 최면’과 다르지 않다. 민생을 외치는 국회가 기억해야 할 부분도 이것이다. 더 나은 삶을 내세운 ‘얄팍한’ 총선득표 전략은 필패일 뿐이다. 일시적 포만감과 편의를 위한 포퓰리즘식 공약 대신 현재 국민이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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