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주창된 ‘제4차 산업혁명’이 뭇사람의 입에 유행어처럼 오르내린지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디지털 혁명에 혼이 빠져서 그런지 제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가까이 다가온 줄도 모르고 살아온 감이 있다. 빅 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드론, 무인 자동차, 3차원 인쇄, 나노 기술과 같은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는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알파고가 세계적 바둑기사들을 모두 쓰러트리는 모습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진 않았다. 자율 전기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영상을 보긴 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이웃이 가솔린 자동차를 손수 운전하는 상황이 현실이다. 자유자제로 하늘을 나는 드론 시연을 보면서 드론 배송이나 드론 탑승이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게 그 혁명의 실루엣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간 식당에서 음식물을 나르는 로봇의 서비스를 받은 것이 새로운 체험이라 할만 하달까. 미처 잘 의식하진 못했지만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서 자동 완성 문구를 편리하게 이용한 경험도 있긴 하다. 기껏해야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을 수시로 체험하고, 외출 중에 스마트폰으로 집의 온도를 조절하는 사물인터넷을 이용하는 일 정도를 앞서가는 지식인의 플렉스 쯤으로 여기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다. 강 건너 불이 마침내 강을 건너온 꼴이다. 게다가 태풍까지 불어오는 모양새다. 그 태풍의 눈은 바로 챗GPT다. 챗GPT는 GPT 3.5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다. 인간 간의 대화와 같이 사용자의 질문에 바로 답하도록 설계된 언어모델이다. 미리 학습된 천문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질문에 즉시 답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대화형 로봇 즉 챗봇이다.

챗봇이 아직 초기 모형이고 실험 단계라 허술한 부분이 있다고 하나 책이나 논문의 요약 등과 같은 비창의적 반복 업무나 시간을 요하는 단순 업무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의 발명 이상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폭발력을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벌써 미국변호사시험(BAR examination) 및 의사 면허 시험에 합격하고 MBA까지 통과했다고 하니 인간으로서 무력감을 느낄만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지만 무서워하고 피할 일은 아니다. 무서움을 이기는 방법은 잘 보고 분석해본 다음 그 실체를 바로 파악하고 그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시신을 얼핏 본 사람은 무서운 환상에 시달리는 법이다. 시신을 잘 보고 관찰한 사람은 불확실한 잔상이 남지 않는다. 무서울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시신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다. 쳇봇이라고 다를 리 없다.

쳇봇은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기계에 불과하다. 그 말은 인간의 존엄성과 위대함을 넘어설 수 없다는 의미다. 엄청난 용량과 빛의 속도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사진기의 발명에 굴하지 않고 마네, 피카소, 앤디 워홀, 백남준 등 위대한 작가들이 창의적인 발상으로 더욱 더 찬란한 미술 발전을 이룩한 역사적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발상만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길이다. 챗봇은 그냥 말 잘 듣는 비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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