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인류의 지성사는 걷기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수많은 사상가와 학자, 예술가들이 걸으면서 사유의 혁명을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걷기는 사색할 수 있게 하며, 어떤 구상을 하거나 암기를 할 때도 도움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제자들을 '소요학파(逍遙學派)'로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함께 걸으면서 강의하고 토론했기 때문이다.

근대를 열어젖힌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고 말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걸으면서 사유를 확장했다. 1786년 상상력의 벽에 부딪힌 그는 이탈리아 여행을 결심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겪고 느끼면서 참다운 나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떠난다"고 밝혔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걷기를 통해 철학을 완성했다. 그는 만성두통을 이겨내기 위해 오랫동안 걸으면서 "걷는 사람의 발끝에서 생각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저술가이자 역사가인 리베카 솔닛은 "걷기는 몸과 마음과 세상이 하나가 되는 상태다. 오랜 불화 끝에 대화를 시작한 세 명의 사람처럼"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걷기의 인문학'으로 번역된 책도 저술했다. 프랑스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걷기'란 글도 유명하다. 그는 "사람은 사회의 일원이기 이전에 자연의 일원이며, 자연의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걷기의 가치는 위대하다. 걷기를 제외한 그 무엇이 건강과 활력, 자연과의 교감, 사색과 평화를 동시에 가져다줄 수 있겠는가.

다양한 걷기 중에서도 맨발걷기가 요즘 전국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맨발걷기를 경험한 이들은 신발의 밑창 때문에 잃어버린 놀라운 감각을 되찾았다고 입을 모은다. 발이 가장 촉각에 예민하고 감각적인 신체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맨발 밑에 있는 경이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맨발걷기 이벤트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전남 순천시는 3월31일 202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개막식에 맞춰 맨발걷기 체험행사를 연다. 생태수도를 자칭하는 순천의 친환경적 '어싱(earthing)길'에 맨발걷기와 걷기명상 등을 접목하겠다는 구상이다. 경북 포항 송도해수욕장과 송도솔숲 일대에서도 오는 4월29일 '제1회 대한민국 맨발걷기축제'가 열린다. 또한 1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경새재 맨발페스티벌'이 오는 8월18일 경북 문경 문경새재에서 열린다.

맨발걷기는 대구가 본산이다. 대구교육대 권택환 교수가 20여년 전 맨발걷기의 효능을 경험한 뒤 10년 전 대한민국맨발학교를 만들어 맨발걷기를 전국적으로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맨발학교는 전국에 100여 개의 지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만 명의 회원들이 맨발걷기에 동참하고 있다. 회비나 후원금을 받지 않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전국의 맨발걷기 동호인 400여명이 지난 3월1일 칠곡 가산수피아에서 개교 10주년 행사를 열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는 대구 수성구도 수성못에서 대한민국맨발학교와 함께하는 맨발걷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용학도서관이 주관하는 '맨발걷기 아카데미'는 맨발걷기에 인문학적 가치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수성구민들이 걸으면서 사색하자는 '생각을 담는 길' 조성사업의 일환이다. 지역주민의 건강과 인문소양 강화를 위해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3월부터 12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40명 단위로 기수별, 권역별로 진행된다.

1기는 3월11일부터 수성못에서, 2기는 6월10일부터 금호강변에서, 3기는 9월2일부터 수성구민운동장에서 맨발로 걷는다. 기수마다 11회씩 맨발걷기의 방법 및 효과 등에 대한 이론교육과 함께, 실습이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대구 인근에 조성된 맨발걷기 전용길을 찾아 나선다. 1기는 칠곡 가산수피아 황톳길을 걸을 예정이다.

맨발걷기 교육과 실습은 매주 한 차례 진행되지만, 개인별로는 100일 동안 매일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롭게 실천하기를 권장한다. 그러면 몸과 마음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간에는 기수별로 만들어진 SNS를 통해 맨발걷기 사진을 공유하면서 스스로 독려하게 된다. 100일 간의 맨발걷기를 달성하면 수성구청장 명의의 수료증과 대한민국맨발학교의 상장이 수여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100일 맨발걷기에 도전하시길 권유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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