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지난해 연말 북한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5대의 소형 무인기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도발을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회색지대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은 모호한 영역이다. 실제 무력 분쟁이나 전쟁으로 확대하지 않도록 의도를 감추면서도 점진적 방식으로 안보 목표를 이루는 전략이다.

2월초에 미국이 자국 영공을 침입한 중국의 기구를 격추하면서 정치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전쟁보다 낮은 강도의 수단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의 새로운 수단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왜 다른 색깔도 많은데 이런 전략을 회색으로 표현할까. 아마 검은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모호한 색깔이어서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회색은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회색 도시’는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 인간미 없는 도시를 말한다. ‘회색 자금’은 출처와 용처 따위가 모호한 자금이다. ‘회색 인간’은 표리부동해서 믿을 수 없는 이중인격자를 일컫는다.

회색이 가장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분야는 정치다. 보통 ‘회색분자’라고 하면 자기주장이 명확하지 않고 철학이 없으며 우유부단한 사람을 가리킨다. 사전에서도 ‘소속, 정치적 노선, 사상적 경향 따위가 뚜렷하지 아니한 사람’이라고 정의를 해두고 있으니 누구에게나 유쾌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따져보자. 회색분자라는 말도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된 용어 아닌가. 흑이냐 백이냐,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그 중간인 회색지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회색분자라고 손가락질해도 되는지를 말이다.

다음은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교 명예교수가 어느 칼럼에서 쓴 글이다. ‘현재의 보수와 진보가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가짜라고 생각하는 진짜 보수나 진짜 진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기존 정치판에서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서게 되는데, 이런 입장을 가리켜 회색이나 중도로 부르기도 한다. 즉, 회색이나 중도는 이념적 기준이라기보다는 현 정치 상황에 대한 평가와 관련된 개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흑백으로만 보고 회색을 무조건적으로 좋지 않게 보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실제 요즘 각 분야에서 회색이 살아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새치를 염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백발로 기르는 ‘고잉그레이(going gray)’ 운동으로 회색이 가진 노화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꾼 사례이다. 그래선지 요즘 젊은이들은 희끗희끗한 머리색을 오히려 힙하게 보기도 한다.

지금은 좌와 우의 끝에 서서 목소리를 키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너는 틀렸고 나는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기보다 ‘내가 틀렸고 너가 옳을 수도 있다’며 흑과 백으로 나눠진 세상에서 회색임을 내세우는 힙한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아닐까.

사회분위기가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중도보수 혹은 중도진보가 설자리가 있어야 한다. 이걸 회색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워 비난을 해대니 흑백 양 끝단의 격렬한 대립을 완충시켜줄 회색이 없어지는 것이다. 가끔 세상을 회색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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