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최근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TV 수신료 통합 징수에 대한 공개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TV 수신료는 텔레비전수상기를 소지한 사람에게 매월 2천500원씩 일률적으로 부과·징수된다. KBS가 부과하고 한국전력이 전기료와 함께 징수하는 구조다. 소비자 선택권, 수신료 납부거부권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수신료가 전기료와 통합 징수되는 까닭에 조세적인 성격을 갖게 되긴 했지만 거부하거나 없애자는 여론이 우세한 건 인지상정이다.

수신료 통합 징수에 대한 위헌여부가 심판대에 오른 적도 있다. 조세법률주의, 평등의 원칙, 법률유보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허나 합헌이라는 결정이 났다. 수신료는 실제 방송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이고 공영방송이라는 공익사업의 소요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것으로서 재정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조세’와 다르고 서비스의 대가로 지불하는 ‘수수료’도 아니라는 것이다. 수신료가 방송의 자유를 실현함에 있어서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사항이라는 인식이 합헌을 옹호하는 논리로 작용한 결과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불변의 기판력을 갖는 건 아니다. 환경이 바뀌고 사정이 변경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 뿐 아니라 법원의 판결도 수정되는 법이다.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바뀌어야 할 만큼 환경과 사정이 변했다. IPTV, OTT 등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공중파 TV를 시청하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런 현실에서 TV 수상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수신료를 강제 부과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수신료 통합 징수 뿐 아니라 수신료 자체를 폐기해야 할 시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신료 부과의 본질적 성격이 잔뜩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영방송이 과연 공공이나 공익에 기여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공영방송만이 제작할 수 있는 공익 프로그램도 쉽게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보도나 계도방송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편향 인사와 편파 보도로 인해 수시로 정쟁에 휘말릴 정도이고 보면 중립성이나 공정성은 언감생심이다. 공공성이나 공익성이 없는 공영방송은 그 존재의의도 없고 국민이 그 운영 경비를 부담해야 할 이유도 없다.

제5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이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와 관행은 과감히 청산돼야 마땅하다. 쳇봇과 유튜브를 비롯한 별의별 앱을 장착한 스마트폰을 손바닥에 붙여 다니면서 광활한 정보의 바다에서 입맛대로 필요한 사항을 취해 돌려보는 세상이다. 공영방송이란 말이 선사시대의 유산쯤으로 들리는 시대에 연관성마저도 의심되는 전기료 청구서에 그 수신료라는 명목으로 슬쩍 끼워 징수하는 원시성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웬만하면 수익자부담이 무난하다. 방송도 시청자가 그 경비를 비례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맞는다. KBS 수신료도 그 실질적인 시청자에게 부과하거나 그 득을 보거나 혜택을 입는 특정 정당이나 노조에게 그 소요 경비를 일정 부분 부담시키는 방법을 연구해볼 필요도 있다. 위헌여부는 결자해지다. 매듭을 맺은 자가 풀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환경과 사정이 변경된 점을 감안하여 수신료 통합 징수의 위헌여부를 다시 심판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쨌거나 수신료 폐지가 상책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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