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수

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셔틀외교가 이루어진 것과 폭넓은 면에서 협력강화를 서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한일 간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기회가 왔다며 정치, 경제, 문화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 관심을 끌었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측의 성의 있는 답변이 없는 것은 아쉬웠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셈법은 달랐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불안한 안보와 경제 회복이 점점 늦어지고, 지금 다소 밑지더라도 차차 채우면 된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12년 만에 정상회담이 수시로 열리게 되었고, 군사정보 공유 등 안보협력의 길도 열었다. 또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양국 재계 인사들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한국 재계 4대 총수가 참석한 것은 20년 만이다. 또 게이오대학에서 한일 청년들에게 협력과 교류를 강조하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길 당부했다. 용기있는 결단이 있었기에 길은 열리고 만남은 이루어졌다.

이번 한일관계 회복 과정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한일·한미관계를 위해 세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국제법이 국내법보다 우선된다는 점을 인식하자. 2012년 사법부에서 국제법에 해당하는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집는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는 국민에게 다시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주었고, 정부에게 풀기 어려운 과제를 남겼다. 일본은 국제법의 효력을 익히 알고 있기에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853년 미국의 개항을 촉구하는 페리 흑선과 1963년 영국 등의 시모노세키 포격으로 일본은 치외법권 등 불평등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법의 위력을 깨달은 일본은 청일전쟁 배상으로 당시 일본정부 예산의 3배에 달하는 배상금을 받았다.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한미방위조약 효력을 체감하고 있지만, 국제법의 중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제법에 대해 잘 알게 되길 기대한다.

둘째 힘을 길러야 친구도 생긴다. 법보다 힘이 앞서는 경우를 자주 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 상공 위로 중국 전투기 침범, 대통령 방일 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도 전형적인 힘자랑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 인플레이션 방지법(IRA)도 상식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은 사드배치에 한국제품 불매운동을 벌였고, 요소수 금수 조치로 고통을 주었다. 우리는 법치주의를 따르되 힘도 길러야 한다. 대만이 군사적으로 약해도 TSMC가 있는 한, 어떤 강대국도 쉽사리 넘볼 수 없다. 그런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도 TSMC에 못지 않다. 2차전지도 중국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우리만의 기술과 능력을 갖추면 누구든 함께 하자고 나설 것이다. 이제 미국, 일본과 반도체, 전기차 협력 등 길을 열어두었고, 세계 최강을 위해 기업, 정부, 학계가 힘을 모을 때다.

셋째, 목표를 향해 함께 나설 원팀을 만들자. 전투에서 이기려면 최적의 전략을 세우고, 서로 협력하며 전술을 펴야한다. 우리는 경제개발계획을 수립, 조율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단기간에 선진국으로 도약한 경험이 있다. 최근 한국인의 일본방문이 크게 늘어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린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일교류가 회복되고 있다는 징표이자 한국관광객이 많이 와서 고맙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코로나19가 아직 2종 전염병이고 황금연휴가 끝나는 5월 8일에야 5종으로 낮춘다. 그때서야 일본인들이 안심하고 해외여행을 갈 것 같다. 그간 우리 저비용항공사는 한일노선에 집중하며 일본으로 열심히 한국인을 실어 날랐다. 한편 세계 각국이 외래객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고 특히 무역·경상수지 적자가 생기면 관광수입이 더욱 절실해진다. 정부도 한쪽은 한국인 출국에, 다른 쪽은 외국인 입국에 열중하는 엇박자는 그만두고, 일본국적 비행기로 서울에 비해 물가도 싼 지방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한 목소리를 내고 의제로 삼으면 좋겠다. 지방도 원팀이 필요하다. 부울경은 서로 밀고 당기는데, 대구와 경북은 하던 통합도 멈췄다.

오랜만에 한일관계가 정상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과거는 잊지 말되 미래를 향해 매진해야 한다. 험한 길을 갈 때 혼자보다 둘이 낫고 셋이면 안심이 된다. 다소 손해 보는 기분이 들더라도 큰 이익이 보인다면 나서야 한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파는 법이다. 길게 보면 지는 게 이기는 것이 될 수 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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