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이틀 전인 월요일. 지인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농장에 심을 나무 몇 그루를 사기위해 대구 인근의 나무시장에 갔다가 너무 많은 묘목을 사왔다며 혼자서 심기는 벅차다는 것이었다.

기온은 완연한 봄날이었다. 농장에는 냉이가 천지였고 어린 쑥도 자라고 있었다. 도와달라는 묘목 심기는 외면한 채 어린 쑥 채취에 정신이 팔렸다. 쑥을 채취하기엔 너무 이른 시기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쑥은 그늘에서 잘 말린 뒤 쑥술을 빚는다. 한자로는 쑥 애(艾)자를 써서 애주(艾酒) 혹은 애엽주(艾葉酒)라고 한다. 2~3년 된 쑥이 좋다고 해서 매년 4월이면 쑥을 채취한 후 말려서 보관하고 있다.

쑥술은 국내 최고 음식 조리서인 수운잡방(1540년)에도 기록되어 있으니 우리나라에선 500년 전부터 빚어왔던 술이다. 은은한 녹색의 빛깔에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가진 흔하지 않는 술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도 쑥을 원료로 만든 술이 있다. 바로 초록색 술인 압생트(Absinthe)다. 압생트에 사용되는 쑥은 향이 강할뿐더러 독성이 있어서 쓴쑥으로 불린다. 독특한 색깔과 향을 가진 특이성 때문에 고흐나 고갱, 피카소, 헤밍웨이 등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다고 한다. 독성 때문에 한때 유럽에선 압생트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 풀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쑥의 약용성분 때문에 쑥술을 빚었다면 유럽에선 쑥의 향과 색 때문에 술을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애주와 압생트가 같은 원료로 만든 술이라면 우리나라와 유럽 간에 비슷한 제조법을 가진 술도 존재한다. 과하주와 포트와인이다.

과하주는 한자로 지날 과(過), 여름 하(夏), 술 주(酒)를 쓴다. 여름을 보내는 술로 막걸리보다 알콜도수가 높고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기온이 높은 여름에 술이 쉽게 상하지 않는 것은 발효주인 막걸리에 증류주인 소주를 넣어 알콜도수를 20% 정도로 높여서다. 단맛이 강한 이유도 도수 높은 소주를 넣어 발효를 중단시키면서 술에 당 성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음식디미방(1670년)에 과하주가 언급된 걸로 봐서 그 이전부터 빚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제조법으로 만드는 술이 유럽에도 있다. 포르투갈의 포트와인(Port Wine)과 스페인의 셰리 와인(Sherry Wine)으로 과실주를 증류해서 만든 브랜디를 와인에 넣어 저장성을 높인 것들이다.

문헌상의 기록으로 보더라도 과하주 제조가 포트 와인보다 100년 정도 앞선다. 이후 개화기인 1900년대에 들어와서도 과하주는 유명한 술이었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 명주로 감홍로, 이강고, 죽력고를 꼽고 또 봄과 여름에 마시기 좋은 술로 봄엔 금천 두견주를, 여름엔 경성 과하주를 꼽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포트 와인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주의 반열에 오른 반면 과하주는 알아보는 사람들조차 많지 않다는 점이다. 맛이나 품질 면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쑥으로 빚는 애주도 마찬가지다. 고문헌에 전해 내려오는 많은 전통주들을 마셔봤지만 애주만한 술이 없었다. 이밖에 잊혀져가는 전통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요즘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은 하이볼에 젊은층이 열광하고 있다. 이런 관심이 전통주로 옮겨오길 간절히 기다려본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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