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프랑스가 연금개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청소원의 파업으로 거리엔 쓰레기가 넘쳐나고 지하철 운행과 항공 운항마저 어려워진 상태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허나 마크롱 대통령의 방송 인터뷰 이후 100만을 넘는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불 속으로 휘발유를 던졌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경찰서를 포함한 관공서를 공격하고 불을 지르는 등 시위가 전보다 격렬해지는 양상이다. 마크롱의 연금 개혁이 잘못된 정책이란 말인가. 아니면 민중이 정녕 어리석은 것일까. 강 건너 불이 아닌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더 오래 일하고 더 늦게 수령한다’는 것이 마크롱 연금 개혁의 핵심 콘셉트이고, 현행 62세인 퇴직 연령을 2030년까지 64세로 순차적으로 연장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연금을 100% 수령하기 위해 노동 기간을 기존 42년에서 43년으로 1년 늘리고, 시행 시점을 2035년에서 2027년으로 앞당기는 방안이다. 반면 연금 최저 수령액을 월 1천15유로(약 142만 원)에서 월 1천200유로(약 168만 원)로 인상하고, 노동시장에 일찍 진입하면 조기 퇴직할 수 있으며, 워킹맘에게 최대 5%를 보너스로 지급하는 세심한 배려도 들어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불가피하고 합리적인 개혁인데도 민중의 반응은 매몰차다.

마크롱의 연금개혁과 이에 대한 프랑스 민중의 행태는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민중의 뜻이 정의나 천심에 닿아 있다는 기존의 믿음에 대해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이러한 회의가 비관론자의 독단이라고 비난받기엔 그 역사가 깊고 유구하다. 중우정치에 대한 현자들의 깊숙한 논의가 소환되는 상황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중우(衆愚)란 어리석은 민중이라는 뜻이고 중우정치는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어리석은 민중에 의해 민주주의가 타락된 것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대표적인 현자들의 날카로운 눈에 중우정치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을 리 없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무조건 반대하는 중우정치의 늪에 빠진 아테네를 목도했던 소크라테스가 오죽하면 스파르타를 이상적으로 봤을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와 유사한 시각을 보여줬다. 통제 불능의 폭민이나 이성보다 감성에 약해 선동되기 쉬운 빈민은 중우정치를 초래하는 민중의 별칭에 다름 아닐 터다.

특히 플라톤의 지적은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에도 놀라울 정도로 잘 들어맞는다. 민중의 인기에 휘둘려 그 요구에 부응하는 표퓰리즘, 능력과 자질 그리고 기여도 등을 고려하지 않는 그릇된 평등관, 개인의 절제와 시민으로서의 도리를 버리고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사회적 병리 현상, 엘리트주의를 부정하고 변덕스러운 민중의 여론에 표류하는 다수결원리 등 그 어느 것 하나 적중하지 않는 것이 없다. 수천 년을 관통하는 지혜가 경이로울 뿐이다.

연금개혁을 코앞에 둔 우리로선 프랑스의 혼란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프랑스 민중의 무분별한 반대와 폭력적 시위를 백안시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연금개혁에 대해선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우리 민중의 이기심, 그리고 이 모순을 안아줘야 하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다수 민중이 그릇된 선택을 희망하는 가운데 어떻게 해야 미래를 위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진정 문제다. 중우정치로 전락한 민주정치를 구원해줄 혁신적 집단지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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