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금요일인 지난 24일 저녁시간에 책을 한 권씩 손에 든 성인 30여 명이 대구의 한 출판사 2층에 모여들었다. 책이 꽂힌 서가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선 이들은 가져온 책을 내놓고 번호표를 하나씩 받았다. 이들의 나이는 30대부터 60대까지였다. 그리고 무작위로 대여섯 명씩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인사를 나누고, 그간의 근황을 묻기도 했다. 초면인 이들도 금세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내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책은 이들을 이어주는 촉매제였다. 간단하게 허기를 면한 뒤 본행사가 시작되자, 이들을 이어주는 책의 효능이 발휘됐다. 진행자가 자신을 소개한 뒤 가져온 책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번호표를 뽑아 책을 건네줄 사람을 선정했다. 환한 표정으로 책을 선물 받은 이는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가져온 책을 선물할 참석자를 추첨한 뒤 활짝 웃는 얼굴로 책을 건넸다.

책 선물이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되면 될수록 참석자들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추첨을 통해 책이 건네지는 데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책이 전해지는 것이었다. 의도하지 않은 맞춤형 책 선물이 상당수 이어졌다. 모두 신기한 일이라면서 박수를 쳤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란 책을 가져온 분은 “용학도서관에서도 사람책 프로그램을 운영된다”면서 책을 소개했는데, 필자가 그 책을 선물로 받는 행운을 맞이했다.

이날 모임은 독서운동을 통해 청년세대와 소통하려는 기성세대가 함께한 자리였다. 비영리단체 ‘책으로 마음잇기’를 구성하는 한 축인 기성세대가 세계 책의 날인 4월23일 발족을 앞두고, 이 단체의 별칭인 ‘책연(冊緣)’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의 인연을 다졌다. 책으로 맺은 인연을 제대로 확인한 셈이다.

이날 필자는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분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분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용학도서관에서 일하면서 겪은 한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가 몇 분 있었기에 5년 가까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어머니와 함께 도서관을 찾아 책읽기에 집중한 청소년이 추리소설집을 펴낸 사례였다.

사례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2020년 대구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도서관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던 중학교 3학년까지 어머니와 함께 주말마다 용학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지냈던 책벌레다. 그 결과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16년 ‘책 읽는 가족’에 선정됐으며,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21년 대구시교육청의 책쓰기 프로젝트를 통해 ‘아몬드 크루아상 실종사건’이란 추리소설집을 발간했다.

그해 용학도서관의 지역작가 초청특강에도 나섰던 주인공은 처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자신이 좋아하는 추리소설에 매달렸다고 한다. 특히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에 등장하는 명탐정 셜록 홈즈에 매료됐다. 그래서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으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수사기법을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찾아 읽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하이퍼텍스트 독서법을 활용한 셈이다.

하이퍼텍스트 독서법은 관심 분야의 책 한 권을 읽으면서 그 속에 담긴 주제나 내용과 관련된 책을 무한정 확장하면서 찾아 읽는 독서법이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독서량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디지털매체에서 얻기 어려운 추론능력과 상상력은 물론 창의력까지 자라났다. 자기주도적 학습이 이뤄진 것이다. 그 덕분에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상대적으로 부담 없이 쓰고 읽을 만한 글을 묶어 책으로 내는 요즘 추세와 달리, 호흡이 긴 추리소설을 펴내는 성과를 거뒀다.

주인공 어머니의 용기에도 찬사를 보낸다. 이웃집 자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학업성적을 올리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분위기 속에서 책읽기에만 집중하는 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했다. 얼마간 불안했지만, 책읽기를 통해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는 답변이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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