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욱

에녹 원장

진동계가 그 고유진동수와 같은 진동수를 가진 외부적 힘을 주기적으로 받을 때 진폭이 뚜렷하게 증가하는 것을 ‘공명현상’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흔히 소리와 관련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순우리말로 ‘껴울림’이라고 한다. 공명현상이 일어나면 진폭과 에너지가 크게 증폭되어 극단의 경우에 물체가 파괴되기도 한다. 같은 음의 단순한 목소리로 유리잔을 깰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원리 때문이다. 유리잔과 목소리의 고유진동수와 일치하는 순간 공명의 극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반론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1940년 워싱턴주 ‘타코마’ 다리의 붕괴사고 역시 공명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공명이 만들어 내는 파괴적이고 비극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공명현상으로 인한 순기능적 측면은 음악에서 나타난다. 아름다운 음률의 하모니는 여러 악기가 만들어 내는 고유진동수의 어우러짐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악기는 발음체가 만들어 내는 여러 진동 중 고유진동수에 맞는 특정 진동수만을 증폭하고 그것이 우리 귀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인간의 목소리가 가지는 개성도 예외는 아니다. 성대의 진동에 따라 여러 소리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목과 혀를 통한 공기의 고유진동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마치 불협화음일 듯한 타악기, 관악기, 그리고 인간의 목소리가 일정한 과정을 통해 천상의 소리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중국 서진의 문신이었던 ‘부현’이 쓴 ‘태자소부잠’이란 책에 ‘근묵자흑’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진다.’라는 의미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의해 쉽게 변할 수 있음을 비유하고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선한 영향을 받지만 나쁜 무리와 어울리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됨을 일깨우고 있다.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고려 말 충신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백로가’를 떠올리게 한다. “까마귀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가 흰빛을 샘낼까 염려스럽구나”라는 시조가 그것이다. 나쁜 사람들을 가까이하면 그들의 시샘을 받아 욕을 볼 수 있으니 그것을 경계하라는 노래이다. 주변 환경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들지 않음을 탓하는 무리’가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검은빛으로 물든 무리가 자신의 타락한 모습은 보지 못하고 오히려 흰빛을 나무라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극찬한 ‘팬덤정치’가 끝없는 탈선으로 치닫고 있다. 하물며 진보성향의 한 언론은 “팬덤 현상이 점점 정치 훌리건으로 흑화”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명백한 오류라며 발끈한다. 오히려 팬덤정치를 “참여민주주의의 요체”이며 발전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최근 공천권을 언급한 극우세력의 전광훈 목사와 김재원 국민의 힘 최고위원의 말들은 점입가경이다. 목사가 공천권 박탈과 정권 교체를 자신의 공이라고 큰소리치는 현실 앞에 눈물겨운 웃음이 앞선다. 하물며 그런 그를 보고 “전광훈 목사께서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했다고 여권 최고위원이 추임새를 넣고 있다.

현재 모습은 마치 사이버 게임의 무분별한 전투 현장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구별하기 힘든 재미난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여야 없이 정치인의 말실수는 재미를 위한 안줏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들에게는 부끄러움도 정치적 책임도 없다. 하물며 개인방송에 나와 “자신은 떳떳하다”라며 유죄판결을 비웃기까지 한다. 그것이 그들의 고유진동수라면 어쩔 수 없다. 극단의 경우 공명현상을 거쳐 파괴의 결과를 겪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화음으로 거듭나길 기다리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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