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복||대구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

황금빛 넓은 들판 넘어 투명한 가을하늘은 공간의 무한함을 느끼게 하고, 창공에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빈틈없이 흐르는 시간의 도도함을 느끼게 한다. 21세기 정보시대 생활필수품이 된 스마트 폰과 인터넷을 받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 중의 하나가 GPS이다.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미국 국방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범지구 위치결정시스템’으로 항법(navigation), 측량, 지도 제작, 시각 동기(time synchronization) 등에 활용되고 있다.

20세기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GPS 개발에 기초가 되었다. 매 찰라 무수한 신호를 송수신을 수행하는 GPS 인공위성은 2만km 상공에서 빠른 속도로 지구를 선회하고 있어서 지상의 시간과 같지 않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초속 3.8km로 이동하는 인공위성에서 시간은 7마이크로초 느리게 흐른다.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라 20,000km 상공에 있는 인공위성은 지상보다 중력이 작으므로 45마이크로초 빠르게 흐른다. 따라서 인공위성의 시간은 지상의 시간보다 매일 38마이크로초 빠르게 흐른다. 각 위성에 탑재되어있는 정밀한 세슘원자시계가 시각을 보정하고 일치시키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연속체 4차원이다. 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풀이한 것을 ‘민코프스키 공간’이라고 한다. 민코프스키 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은 연동되어 늘어났다 줄었다 한다. 중력이 큰 곳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간다. 영화 ‘인스텔라’처럼 중력이 매우 큰 블랙홀에 다녀온 아버지는, 지구에서 노인이 된 딸을 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생물의 탄생과 사멸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생물은 태어나면서 공간을 점유하게 되고 그 존재가 인정된다, 더하여 나만의 안락한 공간 ‘슈필라움(spielraum)’을 확보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공간과 시간은 완전히 별개로 받아들이고 공간의 제약과 시간의 제한을 받으며 생활한다. 약속에는 장소와 시각을 정해야 한다. 문명은 지상의 한 지역에서 전개되었고 인간의 희로애락은 어떤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시간은 인간을 철저하게 지배한다. 세월은 한치도 변경할 수 없다. 아이작 뉴턴의 우주론처럼 시간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계가 없다면 시간을 알 수 있을까? 하늘의 천체와 계절의 변화가 없다면. 맥박은 기계식 시계가 보편적으로 보급되기 전 시간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사람의 휴식기 정상 맥박수는 분당 60-90번 정도이다. 맥박은 동물에 따라 다른데 큰 동물일수록 맥박이 느리다. 코끼리는 대략 30번, 소형 애완견은 100번, 고양이는 120번, 새앙쥐는 300번이다. 맥박이 느린 동물일수록 수명이 길다고 한다.

철학자 칸트는 시간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관념의 틀’로 생각하였다. ‘통일장의 이론’을 찾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환상이며 궁극적으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4차원 시공간을 넘어 11차원의 우주를 말한다. 고차원 세계에서는 프로스트가 가지 못했던 숲속의 ‘두 갈래의 길’이 한 길로 되거나 무수한 길로 얽힐 수 있다. 이육사의 목놓아 부를 수 있는 ‘광야’가 파타고니아의 빙원이나 계곡으로도 나타날 수도 있다. 타고르가 ‘기탄잘리’에서 읊었던 무한한 신의 공간도 한 점으로 줄어들 수 있다.

시인이 그리는 아름다운 세계와 철학자가 아우르는 이상적인 세계는, 물리학자가 도안한 평행우주에 있을까? 아니면 홀로그램 우주 속에 있을까?

박재복(대구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