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은 안데르센의 대표작이다.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감을 짤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낯선 두 사람이 찾아온다. 그들은 능력 없는 바보 같은 사람 눈에는 그들이 짠 옷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임금님은 두 사람에게 많은 돈을 주고 옷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임금님은 빨리 옷을 입고 싶어 장관과 대신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들은 돌아와 아름다운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임금님은 낯선 두 사람에게 훈장과 작위를 주었다. 마침내 임금님은 새 옷을 입고 백성들 앞에 나가 행진을 시작했다. 백성들도 멋진 옷이라고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한 꼬마가 ‘임금님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벌거숭이’라고 외쳤다.

고전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현재적 가치를 가지는 작품이다. 우리가 새삼 이 동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낯선 사람’이다. 사람들을 미혹하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다양한 조직의 안과 밖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고 있다. 유튜브 같은 일인 매체도 그중 하나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 중 상당수가 함량 미달의 ‘낯선 사람’에게 자기 옷을 만들게 한다. 실력자와 권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낯선 자’의 엉터리 같은 언행을 저지하기는커녕 그들에 빌붙어 이득을 취하고 자리를 유지한다. 특정인을 광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은 주변을 기겁하게 하는 목소리와 일사불란한 공격으로 반대 의견을 묵살하며 양식 있는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있다.

“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를.”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제1부 첫 번째 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참된 자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정신적 단계를 낙타, 사자, 아이 순으로 말하고 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막으로 들어가는 낙타는 권력과 권위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가장 낮은 단계다. 용맹하게 포효하는 사자는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자유를 향한 열망의 단계를 말한다. 니체는 ‘스스로 자유를 창조하고, 의무에 대해 신성한 거부를 하기 위해 사자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정신과 육체가 참된 자기로 통합되는 최후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사자가 할 수 없는 것을 어린이는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라고 외친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하다.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남의 눈, 체면, 이해관계를 살피지 않는다. 지나간 일은 금방 잊어버리고 언제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놀이에 몰두한다. 어린이는 매일 새로운 출발을 한다. 그들은 날마다 창조적으로 논다. 아이는 눈치를 살피거나 망설이지 않고 말하며 행동한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굴러가는 수레바퀴다. 맑고 밝고 순수한 열정에서 나오는 창조적인 힘으로 어린이는 굴러간다. 아이는 고인 물이 아니고 흐르는 물이다. 어린이는 몸과 마음이 유연하고 자연스럽다. 어린이는 기존의 인습과 타성에 붙잡혀 있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모색한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라고 외친다. 어린이는 현재와 미래를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비관하지 않고 즐겁게 놀며 새로운 길을 찾는다. 어린이는 목전에 전개되는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긍정하기 때문에 성장하고 창조할 수 있다.

총선이 다가오자, 자신이 벌거벗은 줄도 모른 채 거리를 활보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언론도 편이 갈려 자기편 옷은 무조건 아름답다고 거든다. 한쪽 눈과 귀로만 보고 듣는 사람은 남의 비판과 충고에 신경 쓰지 않는다. 멋지다고 외쳐주는 군중들 사이만 돌아다니면 되기 때문이다. 경제와 안보 등 많은 분야에서 작금의 상황이 만만하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치는 어린이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나라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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