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br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 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매화 향기 가득한 봄날, 아침이다. 향긋한 꽃내음에 기분 좋은 출근길, 부산한 거리를 지나 진료실 앞에 다다르니 커다란 청년이 반갑게 인사한다. 몰라보게 자란 그가 자신을 소개한다. 오래전엔 너무 자라지 않아 수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면서. 이제 며칠 지나면 군에 입대한다는 것이 아닌가. 잊고 있었던 그, 청년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기특하고 대견하여서다. 밤마다 아픔을 참아가며 오랫동안 주사 치료하였고, 힘들지만 꾸준하게 공부도 열심히 하여 꿈에 그리던 대학에 입학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이젠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떠나기 전에 진하게 고마움을 전하려고 짬을 내어 찾아왔다고 말하는 멋쟁이 학생, 키를 물으니, 186이라고 한다. 남자들이 바라는 이상의 숫자라면서 웃는 젊은이. 작았던 그가 이렇게 훌쩍 자랐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새 학년이 시작되는 봄이면 작은 키에 대해 상담하러 오는 부모가 많다. 입학식에 가보니 다른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 가슴이 아팠다는 어머니, 자신의 키가 작아서 아들도 작을까 봐 걱정스러워 찾아왔다는 중년의 아빠, 키 작은 손자를 더 키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해주고 싶다며 빨리 검사해 달라시는 할아버지, 나름의 이유로 성장클리닉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검사를 받는 아이 입장으로는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고 부모의 손에 이끌려 들어와 겁에 질려 울먹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도 의젓한 아이의 모습에 놀랄 때가 있다. 주사는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며 씩씩하게 팔을 내밀던 초등 1학년 아이, 어디서 그런 용기를 얻었느냐고 물으니, 의사에 관한 시리즈로 된 동영상을 몇 번이나 보았다고 하였다. 아이가 먼저 키 크고 싶다고 애원하기에 휴가 내어 찾아왔다는 부부,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면서 성장호르몬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무척이나 질문을 많이 하였다.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외동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건강과 상식이 마구 헤엄치고 있는 듯한 요즘이다.

자라는 아이들은 보석을 대하듯 잘 살피고 어루만지듯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잘 크고 있는 듯하다 가도 사춘기가 일찍 찾아와서 성장이 급속히 진행되면 성장판이 일찍 닫혀버릴 수 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키도 다 못 자라고 마무리되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예상키가 턱없이 작은 경우도 있다.

또래 친구보다 지금은 작아도 나중에 크겠지, 때가 되면 쑥쑥 커 올라가겠지, 생각하고 있다가 다 자라버린 것을 알게 되면 그때 심정은 어떻겠는가. 병적으로 작지만 않으면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키가 작아 자존심 상한다면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방황하고 있다는 아동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안타깝기에 그지없다. 키가 크면 유리한 종목의 선수에게는 그것이 그야말로 그의 장점이자 경쟁력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성장기에 있을 때 꼭 열심히 운동하도록 독려하고 골고루 균형 잡히게 잘 먹여주고 충분히 잠을 푹 깊게 재워서 클 수 있을 때 최대한 노력하여 잘 키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래 계획을 잘 세우는 이는 어떤 고리를 어떻게 이어야 일이 쉽게 풀리는지 안다.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자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잘 알지 못하고 조금 부족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가끔 전문가를 찾아서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무엇을 해주면 더 좋은지 정기적으로 한 번씩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한 끗 차이로 운명이 결정되는 일도 있지 않던가. 무슨 일에서든 성공하고 싶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 자녀에게 필요한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부모가 되어 자녀의 마음을 잘 읽어주며 성공적으로 키워보자. 왜냐하면 자녀는 우리들의 소중한 보석이니까.

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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